2010년 8월 26일 목요일

고민

오래전 얘기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에서 4 년간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본사로 귀임한 후였다. 20 년 넘게 모셨던 사장으로 정년 퇴임하신 분의 댁으로 문안인사를 간 일이 있다.  정년 퇴직 후의 삶을 즐길 것 같았던 그분의 얼굴에는 쓸쓸한 외로움이 깊게 젖어 있었다. 시간이 많아서 취미로 서양화를 그린다고 하셨다.

 

시간이 나시는 대로 회고록을 쓰는게 어떻겠느냐고 여쭈어 봤다. 그분은 웃으면서 할 이야기는 많지만 회고록을 쓰자면 현직에 있었을 때 같이 일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올텐데 그것이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잘 못하면 나만 옳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처럼 남을 폄하하는 것 같이 읽힐 것이고 그것을 읽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일세대이다.  

1979년 네덜란드 라이모터 쇼에 전시된 포니 세단

 

자동차 산업의 산 증인이다. 1967 년에 설립된 현대자동차가 영국 포드 자동차에서 수입한 KD 부품으로 국내 울산공장에서 코티나를 조립생산하던 이야기와 우리나라 첫 국산차 포니를 개발 기획단계에서 부터 국산 자동차 포니의 수출을 위한 해외시장개척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다. 

 

숨은 이야기를 많이 아시고 계실 것 같아 자동차산업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건의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끝내 회고록 집필을 하지 않고 아직 서양화를 그리면서 개인전도 열며 조용히 지내고 계신다.

 

 

필자도 25 년이 넘는 굴곡이 많았던 자동차 수출과 관련되는 수 많은 일들을 정리하여 회고록 비슷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직장생활 말년이 가까워지면서 여러가지 줄거리로 각색도 해봤다. 그래서 1977 년 3 월에 경력사원으로 해외영업부에 입사하여 해외시장개척 등 수출 초기의 좌충우돌했던 일들을 생각나는대로 엮어 보았다.

 

하지만 자기 자랑만 하는 것 같이 들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그냥 에피소드 수준으로 회사의 어느 기록에서도 찾아 볼 수없는 소소한 일의 이야기를 골랐다. 초기 해외출장다니며 외국 문화와 습관을 몰라서  실수하는 얘기나 대리점으로 부터 품질문제로 망신당했던 일 등등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적어 봤다. 하지만 적어도 회고록인데 우스게 소리로 수출 초창기에 이 나라 저 나라 출장 다니면서 해외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는 촌놈 행세나 했던 일만을 적는 것도 문제다 싶어 주요 업적을 나름 추려봤다. 나는 어떤 직책을 맡더라도 선임자가 맡았던 업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싫었다. 같은 업무도 진화시키려고 노력을 해왔던 터였다. 

 

이런 철학에서 일을 하다 보니 오늘의 현대/기아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한 자랑할만한 업적도 이룩했다. 그러나  큰 일을 시작하는데는 항상 장애가 많다. 우선 단독을 결정해서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상부의 결재를 받아 시행하여야 한다. 이 과정이 어려운 것이다. 큰 일일수록 과정이 복잡하고 더 어렵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해보지 않았던 일을 벌이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과정을 회고록에 예를 들어 미국의 10년 10만 마일 워런티의 결정되는 과정을 쓰다 보면 나와 갈등을 일으켰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고록을 집필을 시작해놓고 마지막 부분을 끝맺음하지 못하고 컴퓨터 서류함에서 수년째 잠 재우고 있다.

 

요즘 15 년전에 예전 그분한테서 들었던 얘기가 더욱 쟁쟁하게 귓가에 울린다. 지금 많이 고민하고있다.

댓글 24개:

  1. 들어나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속에 현대/기아의 참 모습을 볼 수 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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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핑구야 날자 - 2010/08/27 08:04
    Reminiscenses라는 캐디고리로 글을 쓰다가 중단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사소한 이야기만을 쓰다 정말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쓰지못하고 고민하고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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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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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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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Anonymous - 2010/08/27 13:52
    어렵네요.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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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Anonymous - 2010/08/27 10:51
    실록을 쓰려면 어떤 안이 결정되는 과정을 상세히 그려야 기록으로써의 가치가 있는데 그 과정에서 반대하고 목청을 높혀 비난했던 사람들 이야기가 나와야하거든요. 그게 어렵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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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세월이 참 모터쇼 사진보니 한복 입고 저렇게 차 앞에 있는걸 보니 요즘 레이싱걸들과는 정말 사뭇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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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Raycat - 2010/08/27 17:12
    철기시대 이야기 같지요? 화란에서 음대를 다니는 유학생이구요 뒤에 서있는 여자는 그곳에서 일하는 간호사였답니다. 콧수염의 남자는 유명을 달리했다는 이야기를 몇년전에 들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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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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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79년이면 제가 태어난 해입니다.

    저와 동갑인 저 포니 세단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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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Anonymous - 2010/08/27 21:15
    고민 좀 더 해보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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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보기다 - 2010/08/27 21:22
    남미에 가면 아직도 현역으로 달리는 포니를 볼 수 있었답니다. 요즘은 모르겠네요. 에콰도르에서 1976년에 수출한 포니가 택시로 운행되고 있어 제가 1993년에 역수입해서 울산공장 자동차박물관에 전시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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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잘 알아서 결정하시겠지만.... 어떤 사람이 어떤 방식의 회고록을 쓴다하여도 관ㅎ련되어있는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그냥 보관만 하신다면 예전의 산업벌전 시대의 역사도 함께 묻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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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빨간내복 - 2010/08/29 01:41
    열릴지 아닐지, 아니면 적극 반대했던 사람들 상처받지 않게 표현하는 것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모르겠어요... 그게 잘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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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앗! 포니 들어봤어요.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는 저에게는 마크님의 회고록이 큰 도움이 되겠어요.

    잘 결정하셔서 회고록 내는 방향으로 되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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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예전에 칼리 피오리나의 힘든 선택들이란 책이 생각납니다.

    Mark님의 회고록이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부디 소중한 경험을 여러 후배들이 읽고,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마무리 집필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요즈음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살해진 것 같은데,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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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불타는 실내화 - 2010/08/29 13:46
    고민을 좀 더 하면서 길을 찾아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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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Happiness™ - 2010/08/29 15:21
    죽기전에 책을 내놓기는 해야할 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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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회고록... 무지 기대됩니다(2)



    한국은 지금 태풍온다는데 조심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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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Cognac - 2010/08/31 22:00
    네, 태풍이 꼬리를 물고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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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회고록이나 자서전 쓰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많이하는 고민인데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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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콩 - 2010/09/01 08:49
    쓰는 것을 중단한지가 2년 쯤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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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공개를 하지 않더라도 정리를 해놓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은가요~?

    저는 아직 회고록을 쓸 만큼의 세월을 살아보진 못했지만, 역시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놓고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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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blackIIwhite - 2010/09/01 22:17
    회고록을 발간하던 않던, 일단 집필은 완성해뒀다가 죽을때 유물로 남기던가 살아있을 때 발간하던가 하려고 합니다. 아프오 고민 좀 더 해보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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