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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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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Motor Holland 선전용 포스터를 촬영하기 위해 현지법인이있는 가가운 곳의 유명한 'Three Mill' 앞에 차를 가지고 갔다. 그것도 아마츄어 사진사가 촬영한답시고 ↓

 

←Mark Juhn's Blog의 프로파일 이미지를 새로 정했다. 최근 1979년 1월에 네덜란드 암스텔담 근교 Rai 에서 개최하는 Rai Motor Show에 출품한 빨간 Pony의 사진을 찾았다.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에서 Pony Sedan은 3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시금석인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차이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상징 풍차 앞에 있는 Pony Sedan이다.

현대자동차 리셉션에서 두 아가씨가 폼을 잡고 있다. 참! 촌스럽죠, 잉~ ↑

맨 오른쪽 아가씨는 현지법인장 비서로 우리 주재원과 친했다

현지법인 Hyundai Motor Holland grand opening 후에 전직원 기념사진을 .. mark가 어디있는지 알아맞쳐보시길...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Once upon a time 46<화란 현지법인>

본사도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뭘 한다고

 

얘기는 다시 1970년대 후반으로 돌아간다. 현대자동차가 처음 해외에 판매법인을 설립한 것은 1978년 초였다. 현지법인의 공식 명칭은 현대모터홀랜드(Hyundai Motor Holland BV.)였다. 1976년에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국산자동차 포니의 수출을 위해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몇나라에 대리점을 지정하고 수출을 시작했지만, 실적을 신통치가 않았었다.

 

우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인지도가 형편없이 낮은데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현대자동차라는 회사를 알린다는 것은 참으로 막막한 일이였다. 그러니 알지 못하는 나라에 있는 회사가 만든 자동차를 과자 값도 아닌 큰돈을 내고 선듯 사겠다는 사람이 많겠는가? 어림없다.

현대자동차 경영진은 일반지역 - 당시 북미, 유럽을 제외한 지역을 일반지역이라고 구분했다 - 에만 수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장을 넓히기 위해 유럽에도 진출해야 한다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몇달 동안 유럽 자동차 시장조사를 실시했다. 그래서 정한 것이 현지법인을 네덜란드에 설치하는 것이였다.

 

펼쳐두기..

to be continued

2009년 4월 3일 금요일

Once upon a time 1 - 다음 호에 계속

현대자동차 현지 법인으로 파견 명령

1978년에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현지 판매법인을 설립했다. 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내가 1977년 3월에 현대에 경력사원 과장으로 입사해 해외판매부 부품수출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건의해서 어떻게 네덜란드에 법인이 설립하기로 하고 결정했는지 초기 과정을 나는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신시장 개척을 위한 기획단계에서 전 부서의 참여하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몇 사람 도는 어떤 부서의 독선적이 계획으로 시행착오를 자초하는 일이 왕왕 발생했다.

아무튼, 법인이 설립하는 선발대 주재원들이 현지에 파견되었다. 대리 두 세 명, 과장 두 명, 그리고 정비요원 한두 명이 관리 재무, 판매 마케팅, 정비 업무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을 현지 채용한 직원들을 총괄하는 부장 한 명과 현지 총책 법인장으로 전무가 파견되어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현지 법인 이름은 현대 모터 홀랜드(Hyundai Motor Holland). 주소는 Middenweg 7, Leidschendam으로 헤이그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우리가 임대해 썼던 건물은 목장 한 가운데 있는 2층 빌라였다. 이곳에 사무실, 숙소 그리고 부품창고와 정비공장, 쇼룸까지 한 곳에 올망졸망 창업을 계획 추진하고 있었다. 전체 대지 면적은 아마도 500평이 넘지 않았을 조그만 규모였다. 이 건물은 원래 캐러밴(캠핑카) 임대사업을 하던 가족의 소유로 우리가 건물은 임대하고 각종 장비는 헐값에 구매하였다. 아직도 캐라반은 주차장에 수십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내가 그곳으로 명을 받고 부임하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비행기를 타고 암스텔담의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국제공항 김포공항 터미널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무지하게 크고 좋아 보였다. 우리나라 국제공항은 현재 할인 마트로 사용되고 있는 하얀 페인트칠을 한 작은 건물이 30년 전 김포 국제공항 건물이었으니 비교가 잘 될 것이다. 스키폴 공항은 규모가 김포공항의 수십 배는 되는 것 같았다.

동료 직원이 공항에 나와 오인균 씨를 마중나왔다.  덥수룩한 장발 머리 - 하기야 그 당시에는 장발이 유행했던 시절 내 머리도 장난이 아니게 길었었다 - 유럽 인들의 키 크고 체격 좋고 잘생긴 모습과 비교해보면  우리 모습은 차라리 초라하게 보였다. 차를 몰고 남으로 고속도로를 따라 삼사십 분쯤 내려왔을 때 차는 좁을 길로 들어서 운하를 따라 짐시 가다 초원의 목장 한가운데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하얀 벽의 이 층 기와집에 차를 멈추고 다 왔다고 나한테 그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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