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첫 인상
이렇게 외화 신고와 세관 검사를 겨우 끝내고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가는 동안 차창 밖의 거리 풍경은 이렇게 못 살 수가 있나 할 정도의 장면만 눈에 들어왔다. 다 떨어진 반바지에 윗도리는 없다. 옷이라고 걸친 것은 구멍뚤린 셔츠다. 때가 꼬질꼬질해서 검은 피부와 색깔이 거의 같다. 어른 아이 다 마찬가지다. 길거리 그늘 땅바닥에 누어 낮잠 자는 반라의 사람들은 내 눈으로는 시체인지 잠자는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아스팔트가 패여 생긴 구멍을 피하다 길가는 사람을 치일 뻔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차로 사람을 치어 죽여도 담배 한 박스로 무마된다고 누군가 나한네 말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동안 교통체증이 심해 힘들게 호텔에 도착했다. 열대 지역이라 에어컨도 없는 차에 앉아 있으니 땀이 온몸을 적신다. 호텔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색깔이 알록달록한 도마뱀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놀고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당시 라고스에는 현대종합상사 주재원 한 명이 있었다. 우리 현대자동차는 나 홀로 몇 달째 외롭게 지내는 차량정비 교육담당 기능직 한 명이 아프리카에 파견 나와 있었다. 그를 위해 서울에서 선물로 밑반찬을 싸왔지만, 이웃나라 가봉에 출장 가고 없었다. 하는 수없이 종합상사 직원한테 맡겼다. 돌아오면 같이 나눠 먹으라고 전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후 확인하는 것을 잊고 말았다. 나눠 먹었을까? 혼자 먹어 버렸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라고스에서 한국 음식재료를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도착 첫날 모처럼 본사에서 출장 왔는데 외식하자고 했다. 먼저 오지에 나와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낮에는 햇볕이 따갑고 무더웠지만, 밤에는 끈적거리기는 해도 참을 만했다. 호텔 근처 괜찮은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공항에서 겪은 얘기를 했더니, 특히 외화는 출국할 때 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외국인이 가지고 들어온 외화를 철저하게 통제 관리하기 때문에 환전도 은행에서 해야 하고 환전한 영수증을 보관하여 출국할 때 체류기간 동안 사용한 돈의 영수증과 남은 외화를 비교하여 일치 여부를 검사한다고 했다. 암시장 환전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만약 출국 때 이런 규정에 안 맞는 꼬투리라도 잡히는 날에는 화를 부르게 된다고 했다. 설마?
나이지리아는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수출하기 위해 개척한 수출 초기 시장 중 하나다. 대리점 사장 이름은 월래 마다리올라. 현대자동차 수출 초기에 근무했던 사람들은 이 사람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현대의 수출 초창기에 나이지리아 대리점은 주요 대리점 중 하나였다. 이 사람은 좀 사악한 면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대리점을 방문 사장을 만나 인사를 했다. 물론 이 사람이 이전에 한국 본사를 방문했을 때 얼굴을 보았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알아봤다. 나이지리아 전통의상을 입고 무게를 잡고 자리에 앉아 있다 나를 맞이한다. "헬로 미스터 젼, 웰컴 투 레이고스. 하우 아르 유?"
revised
Mark Juhn's Blog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에 알림으로써 일상 생활에서 필수교통수단을 어떻게 선택하고 현명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2009년 4월 23일 목요일
Once upon a time 11 <나이제리아 첫 인상>
2009년 4월 22일 수요일
크라이슬러 EV Minivan 우편 배달차
U.S.P.S 는 이 차를 어떤 용도에나 사용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 전기차를 써보고 평가할 작정이다. 이 자동차와 기반 구조가 서로 잘 맞는지도 점검해 볼 생각이라고 한다.
우체국외에도 ConEd, Duke Energy & Electric Power Research Institute (EPRI)도 이 테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Once upon a time 10 <나이제리아 첫인상>
나이지리아의 첫 인상
서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첫 출장에서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라고스, 나이지리아의 수도였다. 지금은 천도한 내륙 아부자가 수도이지만. 라고스 출장은 처음 준비 단계부터 불쾌하게 만든 일이있었다. 주한 영국 대사관 소속 영사가 나이지리아 비자발급을 대행해 주는데 신청 접수 창구에 한국인 직원이 담당하고 있었다. 이 직원에 대한 악명은 각 회사의 여권담당자들 사이에 널려져 있었다. 비자 신청한 장본인 나는 영사관 창구를 찾아갔다. 과연 접수 창구 직원은 불친절하기가 소문대로였다. 요즘 같으면 그런 사람은 즉시 인터넷에 올라오고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쫓겨날 텐데.. 어렵게 비자를 합법적으로 받고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에 왔지만, 라고스 공항에서 경험한 이곳 공항 공무원들의 태도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위해 청사안으로 사람들을 따라와 길게 늘어선 줄의 맨 뒤에 붙어 내 차례를 기다린다. 입국 수속에 거쳐야 하는 절차가 유별났다. 방역검사를 거치면 여권을 내밀고 입국 허가를 받는다. 입국허가 스탬프를 받아야 입국이 가능하다. 입국 수속이 끝나면 소지하고 있는 외화를 신고하고 가방을 다 풀어헤치게 하는 세관 검사가 나를 기다린다.
서울 영국 영사관에서 받은 나이지리아 입국비자 스탬프가 선명한 여권을 관리에게 내밀었다. 그는 대뜸 "당신 이 입국 비자로는 입국이 안 돼." 한다. 황당한 소리다. "무슨 소리냐? 나는 정당하게 서울에서 너의 나라 입국허가 비자를 받았다. 그 스탬프 보이지 않느냐?" 라고 따졌다. 그 시꺼먼 나이지리아 이민 입국심사 담당자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그동안 법이 바뀌어 그 비자는 효력이 없다." 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런 젠장. 이게 무슨 꼴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라는 대로 줄에서 빠져 옆으로 비켜서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통과한다.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갈 즈음에 "츳!" 하는 혀와 입 천장사이로 바람을 보내 내는 소리가 들려 그 쪽을 보니 내 여권을 가지고 있는 놈이 "유 머쓰 기미 썸싱" 라고 말한다. 기가 막힌다. 아, 요놈이 돈 달라고 하는 모양이다. "유 민 머니?" 하고 물으니 " 예스"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참 대담한 놈이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건만 상관하지 않고 대낮에 자기 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한테 돈을 달라는 것이다.
완전히 강도다. 어쩌겠나. 순간 얼마 주지? 하고 생각하다. 지갑을 꺼내 10달러짜리 지폐를 한장 건네 주었다. 이 친구 아무 소리없이 스탬프를 꽝 찍고 연권을 돌려주면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하고 웃는다. 약 오르지? 하는 듯이. 야만인 같으니라구
여기서 좌충 우돌 시작합니다.
서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첫 출장에서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라고스, 나이지리아의 수도였다. 지금은 천도한 내륙 아부자가 수도이지만. 라고스 출장은 처음 준비 단계부터 불쾌하게 만든 일이있었다. 주한 영국 대사관 소속 영사가 나이지리아 비자발급을 대행해 주는데 신청 접수 창구에 한국인 직원이 담당하고 있었다. 이 직원에 대한 악명은 각 회사의 여권담당자들 사이에 널려져 있었다. 비자 신청한 장본인 나는 영사관 창구를 찾아갔다. 과연 접수 창구 직원은 불친절하기가 소문대로였다. 요즘 같으면 그런 사람은 즉시 인터넷에 올라오고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쫓겨날 텐데.. 어렵게 비자를 합법적으로 받고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에 왔지만, 라고스 공항에서 경험한 이곳 공항 공무원들의 태도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위해 청사안으로 사람들을 따라와 길게 늘어선 줄의 맨 뒤에 붙어 내 차례를 기다린다. 입국 수속에 거쳐야 하는 절차가 유별났다. 방역검사를 거치면 여권을 내밀고 입국 허가를 받는다. 입국허가 스탬프를 받아야 입국이 가능하다. 입국 수속이 끝나면 소지하고 있는 외화를 신고하고 가방을 다 풀어헤치게 하는 세관 검사가 나를 기다린다.
서울 영국 영사관에서 받은 나이지리아 입국비자 스탬프가 선명한 여권을 관리에게 내밀었다. 그는 대뜸 "당신 이 입국 비자로는 입국이 안 돼." 한다. 황당한 소리다. "무슨 소리냐? 나는 정당하게 서울에서 너의 나라 입국허가 비자를 받았다. 그 스탬프 보이지 않느냐?" 라고 따졌다. 그 시꺼먼 나이지리아 이민 입국심사 담당자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그동안 법이 바뀌어 그 비자는 효력이 없다." 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런 젠장. 이게 무슨 꼴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라는 대로 줄에서 빠져 옆으로 비켜서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통과한다.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갈 즈음에 "츳!" 하는 혀와 입 천장사이로 바람을 보내 내는 소리가 들려 그 쪽을 보니 내 여권을 가지고 있는 놈이 "유 머쓰 기미 썸싱" 라고 말한다. 기가 막힌다. 아, 요놈이 돈 달라고 하는 모양이다. "유 민 머니?" 하고 물으니 " 예스"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참 대담한 놈이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건만 상관하지 않고 대낮에 자기 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한테 돈을 달라는 것이다.
완전히 강도다. 어쩌겠나. 순간 얼마 주지? 하고 생각하다. 지갑을 꺼내 10달러짜리 지폐를 한장 건네 주었다. 이 친구 아무 소리없이 스탬프를 꽝 찍고 연권을 돌려주면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하고 웃는다. 약 오르지? 하는 듯이. 야만인 같으니라구
여기서 좌충 우돌 시작합니다.
2009년 4월 20일 월요일
Once upon a time 9 <바레인에서 뺨맞아>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서 눈 흘기기
바레인에서 지독하게 망신당하고 다음 목적지인 카타르로 갔다. 이곳은 1971년 UAE로부터 독립한 바레인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조그만 나라다. 하지만, 산유국으로 일 인당 국민소득은 세계최고 수준. 쿠웨이트나 카타르는 땅 면적은 작지만, 산유량 면에서는 알짜 부자 나라다. 이들 나라에는 인도파키스탄등에서 취업이민 온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있다. 이민자가 더 많다는 말도 나온다. 나라가 부자인 만큼 이 나라 국민의 자부심도 강하다.
이곳에 중동 지역담당인 완성차 판매 담당 대리와 동행 출장을 온 것이다. 우선 간단한 인사를 대리점과 나누고 시설을 대충 둘러보면서 바레인에서 같은 수모를 당하지 않으리라 머리를 썼다. 방문 첫째 날 오후 늦은 시각에 회의를 시작했으나 결론 없이 잠시 휴회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이들이 한두 시간 후에 호텔로 오기로 했지만 저녁 시간이 다 돼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대리점에 전화했다. 온다고 했던 사람들이 전화를 받고 있다. 화가 났다. 장시간 비행기 타고 대리점의 애로사항을 협의하고 개선점을 찾자고 왔는데 우리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냐며 따졌다. 그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곧바로 호텔로 우리를 찾아왔으나 회의는 다음 날로 미루고 간단히 식사하고 그들은 돌아갔다.
다음 날, 오늘은 또 어떻게 분위기를 끌고갈까 골몰하며 그들이 보낸 차를 타고 대리점에 갔다. 시설 점검을 다시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잡아놓은 회의 순서를 바꾸면서 기선을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갑작스런 제의에 이들은 그냥 시설 안내를 했다. 회의실로 들어와 준비해온 자료를 펼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록 수출 경험은 없지만 신진 자동차와 지엠코리아 시절에 도요다와 지엠의 A/S부품 수입을 담당했기 때문에 도요다 자동차와 지엠이 대리점 교육용으로 발간한 부품운영 매뉴얼을 달달 외고 있었다. 이것을 써먹을 좋은 기회였다. 재고관리 시스템과 창고 물류관리 시스템에 대한 것을 얘기하고 대충 본 그들의 시설에 대하여 내 느낌을 말하면서 몇 가지 개선할 것을 또박또박 나열했다. 이들이 내 얘기를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을 보고 이제 됐구나 안심을 했다.
부품 재고 운영에서 수요 예측 방법, 발주 시점과 수량 등에 대하여 도요다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인용 설명해 주었다. 내 말을 듣고 이들은 왜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부품 공급은 그 모양으로 하냐고 물으면 내가 현대에 온 지 얼마 안돼서 그러니 앞으로 잘 될 거라고 말하며 화제를 바꾸기도 했다. 사실 나는 도요다 매뉴얼을 꺼내 이번 출장을 위해 단단히 복습했다. 현대자동차 해외부품부에 와서도 그것을 많이 인용하면서 아는 체하기도 했지만. 나는 이들이 현대자동차의 실망스런 부품 공급률, 발주에서 입고까지의 리드 타임 등에 대한 대리점의 불만은 잘 경청해주고 앞으로는 잘 될 것이니 기대하라는 말로 빠져나갔다.
1970년 후반의 중동 여러 나라는 1973년과 1979년의 오일 쇼크로 오일머니를 긁어모아 국가 재정은 많이 튼튼해졌지만, 일반 사회 인프라는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이었다. 그래도 백화점이나 일반 전자 상품가게를 가면 일본 상품과 유럽의 명품이 진열대에 그득히 놓여 있었다. 이들의 삶의 질은 이미 우리보다 훨씬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revised
바레인에서 지독하게 망신당하고 다음 목적지인 카타르로 갔다. 이곳은 1971년 UAE로부터 독립한 바레인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조그만 나라다. 하지만, 산유국으로 일 인당 국민소득은 세계최고 수준. 쿠웨이트나 카타르는 땅 면적은 작지만, 산유량 면에서는 알짜 부자 나라다. 이들 나라에는 인도파키스탄등에서 취업이민 온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있다. 이민자가 더 많다는 말도 나온다. 나라가 부자인 만큼 이 나라 국민의 자부심도 강하다.
이곳에 중동 지역담당인 완성차 판매 담당 대리와 동행 출장을 온 것이다. 우선 간단한 인사를 대리점과 나누고 시설을 대충 둘러보면서 바레인에서 같은 수모를 당하지 않으리라 머리를 썼다. 방문 첫째 날 오후 늦은 시각에 회의를 시작했으나 결론 없이 잠시 휴회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이들이 한두 시간 후에 호텔로 오기로 했지만 저녁 시간이 다 돼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대리점에 전화했다. 온다고 했던 사람들이 전화를 받고 있다. 화가 났다. 장시간 비행기 타고 대리점의 애로사항을 협의하고 개선점을 찾자고 왔는데 우리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냐며 따졌다. 그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곧바로 호텔로 우리를 찾아왔으나 회의는 다음 날로 미루고 간단히 식사하고 그들은 돌아갔다.
다음 날, 오늘은 또 어떻게 분위기를 끌고갈까 골몰하며 그들이 보낸 차를 타고 대리점에 갔다. 시설 점검을 다시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잡아놓은 회의 순서를 바꾸면서 기선을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갑작스런 제의에 이들은 그냥 시설 안내를 했다. 회의실로 들어와 준비해온 자료를 펼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비록 수출 경험은 없지만 신진 자동차와 지엠코리아 시절에 도요다와 지엠의 A/S부품 수입을 담당했기 때문에 도요다 자동차와 지엠이 대리점 교육용으로 발간한 부품운영 매뉴얼을 달달 외고 있었다. 이것을 써먹을 좋은 기회였다. 재고관리 시스템과 창고 물류관리 시스템에 대한 것을 얘기하고 대충 본 그들의 시설에 대하여 내 느낌을 말하면서 몇 가지 개선할 것을 또박또박 나열했다. 이들이 내 얘기를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을 보고 이제 됐구나 안심을 했다.
부품 재고 운영에서 수요 예측 방법, 발주 시점과 수량 등에 대하여 도요다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인용 설명해 주었다. 내 말을 듣고 이들은 왜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부품 공급은 그 모양으로 하냐고 물으면 내가 현대에 온 지 얼마 안돼서 그러니 앞으로 잘 될 거라고 말하며 화제를 바꾸기도 했다. 사실 나는 도요다 매뉴얼을 꺼내 이번 출장을 위해 단단히 복습했다. 현대자동차 해외부품부에 와서도 그것을 많이 인용하면서 아는 체하기도 했지만. 나는 이들이 현대자동차의 실망스런 부품 공급률, 발주에서 입고까지의 리드 타임 등에 대한 대리점의 불만은 잘 경청해주고 앞으로는 잘 될 것이니 기대하라는 말로 빠져나갔다.
1970년 후반의 중동 여러 나라는 1973년과 1979년의 오일 쇼크로 오일머니를 긁어모아 국가 재정은 많이 튼튼해졌지만, 일반 사회 인프라는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이었다. 그래도 백화점이나 일반 전자 상품가게를 가면 일본 상품과 유럽의 명품이 진열대에 그득히 놓여 있었다. 이들의 삶의 질은 이미 우리보다 훨씬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revised
라벨:
도요다,
바레인,
지엠코리아,
카타르,
Reminiscences
My grandson back to Frankfrut, Germany
소자 녀석이 지난 두 주일동안 오래만에 우리와 같이 지내고 오늘 독일로 돌아갔다.
The past two weeks with my grandson was a happy time for me. Now he is going back to Frankfrut, Germany with his mom and dad.


요녀석이 한시간 후면 비행기 타고 떠난다. 지난 두 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우리 혼을 빼놓았다.
My only grandchild Woojin. He will be leaving me in an hour but stay with me always in my mind.
The past two weeks with my grandson was a happy time for me. Now he is going back to Frankfrut, Germany with his mom and dad.
My only grandchild Woojin. He will be leaving me in an hour but stay with me always in my mind.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1 Volkswagen > 2 Toyota > 3 General Motors
금년 1분기 세계 자동차 판매에서 Volkswagen이 Toyota를 능가했다. 지난 수년 동안 전세계 자동차 판매 왕좌를 Toyota와 General Motors간에 누가 찾이할 것인가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이제 독일 자동차회사가 새로운 전쟁에서 이겨 왕좌를 찾이할 준비하고 있는데 이는 Volkswagen이다. 하지만 VW의 상승세는 판매증가에서 보다는 GM과 Toyota의 판매 감소가 VW 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자동차 판매량으로 이의없이 제1위인 도요다 자동차는 2009년 1분기 판매 실적은 전년 비 무려 47%나 감소해 123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개대한다. Volkswagen의 판매는 139만대로 도요다 보다 훨씬 적은 판매감소를 보이고 있다. GM이 아직 3위를 지킬지 확실치 않다는 말도 나온다. VW의 전세계 판매에서 우세를 보이는 이유는 뭔가? 도요다의 두 주요 시장은 미국과 일본이다. 이 두시장은 세계경제 하락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곳이다. 반대로 VeeDub은 독일, 중국, 브라질에서 아주 강하다. 또 신차 판매를 지원하기 위해 이 나라들은 폐차보상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것이 효과를 보고 있고 VW이 그 덕을 보고 있는 것.
물론, 제너럴모터즈와 도요다가 지난 2-3 년 보여준 것은 일등(worldwide sales supremacy)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흥미를 끄는 것은 VW이 현재의 시장 점유율을 계속 지켜 나갈지... 이상은 오토모티브 뉴스에 나온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
현재 자동차 판매량으로 이의없이 제1위인 도요다 자동차는 2009년 1분기 판매 실적은 전년 비 무려 47%나 감소해 123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개대한다. Volkswagen의 판매는 139만대로 도요다 보다 훨씬 적은 판매감소를 보이고 있다. GM이 아직 3위를 지킬지 확실치 않다는 말도 나온다. VW의 전세계 판매에서 우세를 보이는 이유는 뭔가? 도요다의 두 주요 시장은 미국과 일본이다. 이 두시장은 세계경제 하락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곳이다. 반대로 VeeDub은 독일, 중국, 브라질에서 아주 강하다. 또 신차 판매를 지원하기 위해 이 나라들은 폐차보상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것이 효과를 보고 있고 VW이 그 덕을 보고 있는 것.
물론, 제너럴모터즈와 도요다가 지난 2-3 년 보여준 것은 일등(worldwide sales supremacy)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흥미를 끄는 것은 VW이 현재의 시장 점유율을 계속 지켜 나갈지... 이상은 오토모티브 뉴스에 나온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Once upon a time 8 <맞으면서 배운다>
1970년대에는 팩스는 이제 막 실용화 시작 단계였고, 인터넷은 없던 시절. 텔렉스가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면 밤새 도착한 텔렉스를 통신실에 찾아가서 수신된 내용을 꼼꼼히 점검한다. 오늘은 또 어떤 문제가 터졌나 하는 조바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새벽에 출근하는 정세영 사장님께서 해외에서 들어온 텔렉스를 먼저 읽고는 대리점의 불만이 있으면 담당자들이 불려가 혼나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래서 모든 부서장은 서로 경쟁하듯이 먼저 출근하여 텔렉스를 점검하고 문제에 대한 이유와 해결 방안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가 호출되는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맞으면서 배운다
잔뜩 긴장하고 대리점 사장실에 도착하여 사장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대리점 사장은 이름이 쉐이크, 이름 앞에 쉐이크라는 호칭이 붙어 있는 것은 왕족이라는 것인데 이 사람도 그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사돈의 팔촌 정도나 되나?
본격적으로 회의기 시작되었다. 대리점 사장은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부품담당자가 방문해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발주한 부품이 아직도 선적되지 않아 고장 난 자동차를 수리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부품이 없어 고객에게 판매 대기 중인 차에서 부품을 떼어다 수리를 한다고 했다.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부품을 떼어낸 차들을 나한테 보여주며 현실을 확인시켰다. 이렇게 백오더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더니, 이어 주문한 부품이 잘못 선적되어 쓸모없는 부품이 싸여 있다거나 선적된 부품의 과부족 발생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문제가 한꺼번에 내 앞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미 예견된 불만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뭐라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한다면서 아프터 서비스를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본사가 원망스럽기 조차했다. 대부분 불만은 선적 지연이였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해외부품부에는 아프터 서비스라는 개념이 없었다. 서비스부가 부품을 겸직하는 것쯤으로 생각했고 실제 부품카달로그도 정비를 맡은 서비스부에서 발간하고 있었다.
수시로 발생하는 설계변경에 따른 부품번호 변경도 부품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설계변경이 되면 구형은 신형에 사용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무도 그런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 부품본부가 갖추어야 할 기본조건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입사 후에 바로 간파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해외판매사업부장에 보고했었다. 해외부품부에는 부품을 조달하는 구매기능이 필요했고, 부품의 입고, 저장, 포장 출고 등 일련의 물류관리를 위한 창고와 인력 확보의 필요성에 대하여 매년 사업계획에 포함하여 건의했다.
내가 1977년 3월에 해외 부품부의 상황이 어땠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해외부품부의 부서장은 차장이었다. 이 분은 마침 남미 출장 중이어서 면접 그리고 첫 출근하는 날도 대면을 할 수 없었다. 본사조직으로는 대리가 두 명, 사원이 두 명 그리고 기능직 여사원 한 명 이였고, 울산 공장에는 생산용 자재 창고의 한구석에 삼사십 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서 사무실 겸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입고 포장담당 직원인 기능직 사원이 열 두세 명이 있었다. 이게 전부였다.
해외 대리점에 공급해야 할 부품은 대부분 국산화가 되어 있었지만, 기능상 중요한 파워트레인 계통의 상당 부분은 아직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품부에서 직접 수입하는 것이 아니고 자동차 조립생산용 수입품을 관장하는 KD 자재부에서 차용, 분해하여 대리점에 선적하는 방식으로 임시변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대리점에서 요구하는 부품을 제대로 공급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revised
맞으면서 배운다
잔뜩 긴장하고 대리점 사장실에 도착하여 사장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대리점 사장은 이름이 쉐이크, 이름 앞에 쉐이크라는 호칭이 붙어 있는 것은 왕족이라는 것인데 이 사람도 그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사돈의 팔촌 정도나 되나?
본격적으로 회의기 시작되었다. 대리점 사장은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부품담당자가 방문해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발주한 부품이 아직도 선적되지 않아 고장 난 자동차를 수리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부품이 없어 고객에게 판매 대기 중인 차에서 부품을 떼어다 수리를 한다고 했다.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부품을 떼어낸 차들을 나한테 보여주며 현실을 확인시켰다. 이렇게 백오더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더니, 이어 주문한 부품이 잘못 선적되어 쓸모없는 부품이 싸여 있다거나 선적된 부품의 과부족 발생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문제가 한꺼번에 내 앞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미 예견된 불만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뭐라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한다면서 아프터 서비스를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본사가 원망스럽기 조차했다. 대부분 불만은 선적 지연이였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해외부품부에는 아프터 서비스라는 개념이 없었다. 서비스부가 부품을 겸직하는 것쯤으로 생각했고 실제 부품카달로그도 정비를 맡은 서비스부에서 발간하고 있었다.
수시로 발생하는 설계변경에 따른 부품번호 변경도 부품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설계변경이 되면 구형은 신형에 사용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무도 그런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 부품본부가 갖추어야 할 기본조건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입사 후에 바로 간파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해외판매사업부장에 보고했었다. 해외부품부에는 부품을 조달하는 구매기능이 필요했고, 부품의 입고, 저장, 포장 출고 등 일련의 물류관리를 위한 창고와 인력 확보의 필요성에 대하여 매년 사업계획에 포함하여 건의했다.
내가 1977년 3월에 해외 부품부의 상황이 어땠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해외부품부의 부서장은 차장이었다. 이 분은 마침 남미 출장 중이어서 면접 그리고 첫 출근하는 날도 대면을 할 수 없었다. 본사조직으로는 대리가 두 명, 사원이 두 명 그리고 기능직 여사원 한 명 이였고, 울산 공장에는 생산용 자재 창고의 한구석에 삼사십 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서 사무실 겸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입고 포장담당 직원인 기능직 사원이 열 두세 명이 있었다. 이게 전부였다.
해외 대리점에 공급해야 할 부품은 대부분 국산화가 되어 있었지만, 기능상 중요한 파워트레인 계통의 상당 부분은 아직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품부에서 직접 수입하는 것이 아니고 자동차 조립생산용 수입품을 관장하는 KD 자재부에서 차용, 분해하여 대리점에 선적하는 방식으로 임시변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대리점에서 요구하는 부품을 제대로 공급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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