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이 어제 날짜 조선일보에 실렸다. 김지하 시인이 속상해 하는 마음을 표현한 글이다. 전적으로 동감이 가 여기에 옮겼다. 물론, 이 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그런 것 개의치 않을 것이다.
[시론] 천만원짜리 개망신
입력 : 2009.09.25 22:31 / 수정 : 2009.09.25 23:38
- ▲ 김지하 시인
그들이 지난 집권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나랏돈을 처먹었는지 너무도 잘 아는 나를 시골로 낙향해버리게 만든, 바로 그 장본인들이…
나는 지금 여기 없다.여기란 누구나 다 알 듯이 이른바 공론(公論)의 현장이다. 공론의 현장. 오해의 여지가 많은 말이나 무슨 뜻인지는 또한 누구나 안다. 이른바 '입질'하는 자리다.
고 노무현 대통령 스타일로 말하면 '주둥이 까는 자리'다. '주둥이 까는 자리!'
나는 시골에 산다. 요즘 사는 곳은 알리고 싶지 않다.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또 알고 싶어도 알지 말아 주기 바란다. 왜 숨어 사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뻔하다.
"내가 왜 숨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숨어? '×' 같아서 얼굴 돌린 것뿐이지!"
이 '×'이란 말 꼭 지우지 말기 바란다.
조선일보가 물론 '막말 코리아'란 특집까지 내면서 쌍소리 천국에 개탄을 거듭하는 줄은 잘 안다. 그러나 15세기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막말 천지였다. 르네상스의 도화선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 네오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는 증거다. 르네상스 없었으면 오늘까지 세계를 잡아 흔든 유럽 권력과 서구문명은 없다. 그런데 그 네오 르네상스가 다가오는 발자국이 곧 막말이니 지우지 말기 바란다는 말이다.
시골구석에 앉아 못난 삶을 살아가는 주제에 왜 또 '주둥이 까는 짓'을 하려는 걸까?
정운찬씨 때문이다. 나는 정운찬씨를 좋아한다. 한 번 만나 밥 먹은 일밖에 없지만 그이의 경제 노선(路線)을 잘 알고 있다. 그이의 평소 삶의 태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그이를 참으로 좋아하게 된 것은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1889~1970) 박사와의 인연을 알고 나서부터다.
무슨 얘기인가?
스코필드 박사는 정운찬씨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 박사가 하루는 정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돈 있어?"
"없습니다."
"줄까?"
"네."
"언제 갚을 건데?"
"못 갚습니다."
"어째서? 갚을 돈을 벌 자신이 없어서?"
"네."
"그래. 그래야 한다. 그런 태도로 살아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나는 그저 멀리서라도 그이 잘 되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스코필드 박사가 항일 의사 강우규(姜宇奎·1855~1920) 선생 재판정에 참석했다가 나오면서 하신 말씀이라 한다.
"사람은 저래야 한다. 위기를 뚫고 가는 사람은 저렇게 분명해야 한다." 분명한 것.
맹자(孟子)는 이러한 태도를 두고 '명지(明志)'라 했다. '뜻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진솔한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동·서양의 판단이 같은 모양이다.
청문회에서 어딘가로부터 천만원을 받은 사실을 까발리는 공격 앞에 간단히 '그렇다'고 대답한 정운찬씨를 보고 나는 맹자와 스코필드 박사를 떠올렸다. 그래야 한다. 총리 못하면 어떠냐!
그러나 그 태도로 총리 한다면 이 위기 국면, 거대한 문명사 변동의 한복판인 한반도의 지금 이 국면에 평소의 그 소신과 경제·사회 노선의 그 원만하면서도 날카로운, 중도 진보의 참다운 빛을 보탤 것이 분명하다.
안 된 것은 자기들 자신이 대권 후보로까지 밀었던 사람을 천만원으로 잡아먹겠다고 벼르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이다.
지우지 말기 바란다.
그래! 한마디로 '×' 같아서 이 글을 쓴다.
그들이 지난 집권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나랏돈을 처먹었는지 너무도 잘 아는 내가 시골로 낙향할 만큼 얼굴을 돌려버리게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인 그들이 '주둥이 까는 자리'에 있다고 해서 '천만원짜리 개망신'을 사서 한다고 낄낄대는 이곳 시골 인심을 알려주는 것도 한 못난 애국이라 생각해서다.
그나저나 막말이 이리 질펀해서 국운(國運) 좋은 건 따 놓은 당상이다. 나 같은 욕쟁이가 입 닫고 공부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막말이라는게 거부감이 있는 대상 혹은 내용인경우 막말이 성립이 되는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읽으면서 별로 막말이란 생각이 안드는걸요.
답글삭제밭에 뿌린 거름을 보고 더럽다고 하는 사람 없잖아요!?..
( 거름을 방에 뿌리면 얘기가 달라지죠.. 이럴때가 막말 성립이 아닐지 ㅋ )
@kei - 2009/09/27 17:36
답글삭제좀 거칠게 표현은 했지만 맞는 말, 옳은 말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펼칠 때, 여론을 무시해서도 안되겠지만,
답글삭제시류에 너무 쉽게 휩쓸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럴때 마다 사람의 사고방식이 어쩌면 저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곤 하는데요. 어쩌면 그것은 원래부터 스스로 품은 뜻이 없었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소신을 가진다는 것이 큰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spk - 2009/09/27 22:51
답글삭제남들이 뭐랄까 소신을 숨기는 사람이 있지요. 이런 경우는 소신이라 할 수 없네요. 여론에 따라 자기 소신을 바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론에 개의치 않고 소신을 지키는 사람이 있지요. 멋진 월요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꼬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답글삭제자신의 부정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을 '명지(明志)'로 풀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보기 좋습니다만, 언행일치또한 중요하기에 무한 반복 말뿐인 그들의 스스럼없는 인정이 어떤 때는 보기 좋게 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회색웃음 - 2009/09/28 13:14
답글삭제청문회에서 정운찬 총리후보를 멧돌에 갈려고 했던 국회의원들 저는 그 사람들한테 정운찬씨보다 깨끗하냐고 묻고 싶었을 뿐이고...
이런 청문회라면 꼭 할 필요가 있을지... 국회의원들은 무슨 3류 흥신소직원들 같고 그나마 야당시각에서 하자(?)없는 국방부장관 후보자에게는 제법 정책적이고 능력검증 위주의 질문을 하긴 하던데 그 질문조차 수준 미달이였고... 에효~ 여야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일테지만요
답글삭제@세바스찬 - 2009/09/28 20:28
답글삭제우리나라 정치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분노가 끌어오릅니다. 민주당 국회의원중 청문회에서 가장 정운찬 총리후보를 괴롭혔던 김 종률의원은 청문회 끝나기도 전에 의원직을 박탈당했지요. 무슨 뭐 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mark - 2009/09/28 14:22
답글삭제네~ 어떤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저도 동감합니다.
그들은 어른들인데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씩 국회 앞에서 무릎 꿇게 하고 두 손 들고 벌 세우고 싶어요.
잘못하면 복도에 나와서 벌받는 아이들처럼 말이에요.
(저 너무 과격하죠? ㅠ.ㅠ)
어떻게 하면 부정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회색웃음 - 2009/09/28 13:14
답글삭제부정의 고리를 끊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같이 참여해야 합니다. 나부터 범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 가짐이 필요합니다. 선거에서는 정말 끼끗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고요.
잘 보고 갑니다.
답글삭제어쩌면 더이상 좌우로 모든걸 나누려는 시도는 불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념보다는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낡은 패러다임을 깨는 정치인이 하루빨리 나오기를 희망합니다.
@jay - 2009/09/29 20:03
답글삭제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