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에 올라온 기쁨을 이렇게 표시했다.
Our team reached the ridge of mountains. Trekking along trail on the ridge is far easier than climbing.
A five minutes break on a ridge of Mt. Kita. The members of trek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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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Juhn's Blog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에 알림으로써 일상 생활에서 필수교통수단을 어떻게 선택하고 현명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능선에 올라온 기쁨을 이렇게 표시했다.
Our team reached the ridge of mountains. Trekking along trail on the ridge is far easier than climbing.
A five minutes break on a ridge of Mt. Kita. The members of trekking.
펼쳐두기.. 산장까지 2분 남았다고 씌여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오늘 참 많이도 걸었다. 열 시간 걷지 않았는가? The sign says " 2 minutes to go to the lodge" It was a really long day today, though.
첫날 아침 부터 비기 제법 많이 내린다. 산행 과정을 짬짬이 카메라에 담아 볼려고 했지만 비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It rained heavily. Due to rain taking photographs of trekking was really difficult.
등산이 시작되는 지점은 이곳 아시야스 이와조노칸 호텔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있다. 한 시간 정도 임도(林道)를 따라 가야한다. 비가 많이 올때는 이 임도는 통과를 시키지 않는다고. 호텔 창밖으로 내다본 비오는..
The taxi took us as far as the entrance of the park which is 32 miles away from the hotel.
After appease our hunger with a lunch box, we started trekking in the rain.
펼쳐두기.. 간밤 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계곡을 이렇게 물이 넘치고... 등산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With the rain during the last night and now, the valley overflew. When we climbed for three hours to reach 4,000 feet high, there was ramined snow in the valley. 많이 지친다. 쉬었다 가자고 했다. 휴식하고 있는 뒤로 풀밭이... 해발 2,800m 쯤 오르자 숲은 없어지고 관목만이.. 야생화가 널부러져 있다.
We reached a ridge after three hours of hard climbing,
4박 5일간의 일본 남알프스 키타다케(北岳)트레킹을 마치고 오늘 오후에 귀국하였다. 지난 4일간의 산행을 내일부터 사진과 함께 코스 설명을 간략하게 포스트할 예정이다.
7월23일 아침 8시50분 인천공항을 떠나 지난 6월 25일 개항했다는 시즈오카 공항에 10시45분에 도착하였다. 공항 이름은 Mt. Fuji Shizuoka Airport. 후지산 관광객 유치를 위한 공항으로 군용비행장을 확장했다고 한다.
트레킹 코스를 요약하면, 남알프스 등산 거점인 아시야스 온천 호텔에서의 첫날 밤은 날씨가 꾸질꾸질. 예감이 좋지 않지만 어쩌랴? 밤새 빗소리가 들렸으나 호텔옆 큰 계곡의 물소리였기를 바랬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아심 5시 50분에 일행은 히로가와라(廣河原-1.520m)로 차로 이동한다. 트레커들을 나르는 승합택시 종점이기도 한 이곳에는 다른 무리들이 빗속에서 산행 준비 중이거나 이미 출발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도 호텔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태충 때우고 비옷을 차려입고 산행을 시작한다.
이때가 아침 7시. 비를 맞으며 세 시간쯤 올라갔을 때 계곡에 녹다 말은 눈이 보인다. 이어 시라네고이케산장(白根小池小屋)에서 카레라이스로 점심먹고, 10시55분 산장을 출발하자 급경사 가 나온다.
세시간 반을 올라 가다(肩)노고야(小屋)(3,000m)에 도착. 이곳을 바로 지나 한 시간 가량 더 올라갔을 때 해발 3,193m의 키다다케(北岳)정상을 밟는다. 정상에서 다시 40분 정도 능선을 따라 가니 키다다케 산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산장에 도착한 시각은 5시. 여기서 짐을 풀었다. 첫날 총 산행시간은 점심시간 포함하여 열시간.
키다다케산장의 소등시간은 초저녁 8시 정각.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인실 마루방에서 코 고는 소리를 들어가며 잠을 청한다.
아침 4시 25분경 일출 시각. 잠에 깨어 창밖을 보니 일출 광경이 눈앞에 찬란하게 펄쳐진다. 산 넘어 해가 솟아 오른다. 일본에서 제일 높은 후지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카메라 셔터를 연속 누른다. 어제 하루종일 구름 속에 빗속에 온 것을 생각하면 아침 햇살을 보는 것은 행운인 거 같다.
펼쳐두기.. 그러나, 행운으로 생각했던 해는 산행이 시작하자 마자 비바람으로 모습을 감춘다. 주로 8~9부 능선으로 걸어가는 길은 옆에서 몰아치는 비와 바람으로 몸이 휘청거리고 스틱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옆을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저 아래 낭떨어지로 그냥 갈 수도 있다. 예정시간은 여섯시간 반쯤으로 잡았지만, 다이몬자와(大問澤-1,710m) 산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세시. 총 산행시간은 8시간. 다이몬자와 산장은 다음 날 마지막 서 너 시간의 하산 길을 남긴 마지막 쉼터다. 마침 우리가 묵은 이층은 우리 일행뿐 다른 팀과 섞이지 않아 좋았다. 일행은 모두 열명이다. 속초시청 산악회원 일곱 산사나이들. 청주에서 합류한 60대 초반의 산꾼 그리고 나와 트레킹 가이드 모두 열명이 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소주로 푼다. 아침에 일어나 우리는 생각치도 않은 멀리 후지산을 본다. 산 정상은 구름 모자를 쓴 듯 후지산이 구름위로 솟아 올라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외나무 다리로 계곡을 몇차례 건너 네시간 가까이 질퍽거리는 산비탈 길을 오르내려 나라타(奈良田- 820m) 온천마을까지 내려와 온천으로 피로를 푼다. 이번 산행은 총 거리는 약 35km. 비만 안왔으면 좋은 경관을 찍어 올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게 아쉽다.
내가 미국 현지법인에서 본사 해외영업본부로 귀임해서 맡은 일은 중남미지역 담당이었다. 현대자동차가 1976년 처음 에콰도르에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포니 다섯 대를 처녀 수출한 이후 남미시장 경제는 언제나 불안정 했었다. 불경기에 엄청난 일플레이션은 상상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이였다. 브라질은 한때 일년 인플레이션이 2,300 퍼센트였던 일도 있다. 물가가 일년에 전년비 23 배나 뛰어올랐다면 믿겠는가?
중님미 시장을 맡아 업무파악을 끝내자 바로 브라질로 날아갔다. 브라질에 대리점을 선정작업을 추진하고 판매를 이어가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남미를 맡아왔던 직원과 함께 브라질로 달려가 그동안 직원이 물색해 놓은 대리점 후보사를 방문하였다. 상담 결과를 평가해 대리점 선정작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였다. 어떤 후보사는 제지회사였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관심이 없는 듯 우리를 홀대하여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우리의 브랜드 이미지를 짐작할 수있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조속이 견실한 대리점을 지정, 현대를 대표하는 지역대리점이 판매를 시작하게 하는 일이었다. 여러개의 복수로 추천된 후보사를 돌아가며 찾아가 그들의 사업계획을 들었지만, 흡족한 후보가 나타나지 않아 속알이를 하였다.
펼쳐두기.. 최종 후보로 BMW를 수입 판매하고 있는 딜러가 있었는데, 여러 평가항목에서 제일 나아보였다. 본사 해외영업본부의 결재를 받아 대리점을 지정 작업을 끝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레지날도 레지노. 브라질 어로 발음하면 헤지나우도 헤지노 비슷하게 발음된다. 이때는 현대차가 액센트를 개발하여 미국과 유럽 기타 일반 시장에 수출하고 있었다. 신규 대리점으로 지정된 레지날도 레지노의 초두 생산 오더를 접수한 본사는 사양을 점검하는 도중 큰 문제가 발견된 것이다. 일찍이 파산한 대리점이 약속했던 판매량을 달성하지 못하여 계획된 생산오더를 이행치 못함에 따라 공장의 재자부는 브라질 사양 부품이 창고에서 녹슬어 가고있었다. 잉여재고 처리에 골치를 앓았더 해외영업본부 담당 자는 액센트를 개발하면서 브라질 사양을 아예 빼버린 것이다. 대리점이 없으니 판매를 안한다고 생각했는지, 브라질을 영원히 포기한다면 몰라도, 당분가 대리점이 없어 수출이 잠시 중단되었을 뿐인데 브라질 사양을 제외시킨 것은 완전 넌센스였다. 브라질 사양은 좀 특별하다. 이 나라는 사탕수수 생산이 원낙 많아 알콜 생산량도 세계 제일이다. 휘발유를 사용하는 보통 내연기관 엔진에 알콜 즉, 에타놀을 섞은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한다. 이런 사양이 개발이 되지 않아 대리점의 생산 주문을 접수하고도 생산할 수가 없었다. 문제가 심각해진 본사는 개발을 위한 최소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안 찾기에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할 판이었다. 브라질로 날아가 다른 수입차 딜러 쇼룸을 찾아가 엔진룸 뚜껑을 열어 보고 실제 브라질 사양인지 제 삼국에서 들어온 것인지를 조사했다. 미쓰비시 쇼륨도 가보고, 혼다 쇼룸도 가보았다. 우리는 쾌재를 불었다. 일본차 대리점들이 미국에서 그레이 마케트로 수입한 미국사양의 차종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쇼룸 직원한테도 직접 물어 보았다. 그들도 이 차들이 미국에서 수입된 거라고 확인해주었다. to be continued
브라질 시장과의 악연
겁나는 비행기 타는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일하는 스토리를 적어 나가야겠다..
다시 말하는데 여기서 쓰려고 하는 얘기는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 초창기 경험없는 사람들이 해외 시장에 나가 실수하고 여기저기 부딛치면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주로 할려고 한다. 내가 뭐 잘했다 뭐 그러지는 않을려고 한다.
현대자동차는 어쩌면 브라질 시장과는 운대가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과거 30년간 브라질은 자동차 산업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왔던 미국의 빅 3자동차 메이커와 독일의 폴크스바겐과 이탈리아의 피아트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브라질의 완성차 수입을 막아왔었다. 이렇게 지난 20년 넘게 닫혔던 브라질 시장이 드디어 정부의 정책변화로 1992년에 외국산 완성차의 수입을 허가하였다. 시장개방이 현실화되자 현대자동차도 대리점을 서둘러 선정했다. 1992년는 내가 미국에서 북미 총괄 현지법인에서 수석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었으므로 브라질 대리점 선정 과정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다른 사람이 맡아 이 일를 추진했었다.
첫 번째 대리점으로 선정된 사람은 당시 미국 포드 대리점의 딜러 중 하나인 가라벨로 그룹이었다. 딜러로서의 판매실적은 양호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딜러는 딜러다. 대리점 될 후보와는 그릇이 다르다. 현대자동차로써는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초기 시장 공략을 위하여 남미 담당자들을 브라질에 전적으로 투입하여 총력을 기울였다. 그것은 남미에서도 국토가 제일 크고 국민도 1억 5천만이나 되며 지하자원도 풍부하여 브라질을 중점관리 시장으로 지목하고 관리할 생각이었다.
모처럼 외국산 자동차를 수입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브라질 국산차의 품질에 대한 불만이 컸던 브라질 자동차 고객은 수입차에 대한 관심이거의 폭발적이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히트한 엑셀(Excel)로 브라질 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이때까지 브라질 소비자들은 주로 찾는 차종은 배기랼 1리터 미만의 A클래스 소형(우리나라 경차 급)이었기 때문에 브라질에서는 B클래스에 속하는 엑셀의 수요는 그렇게 많지 않아 기대하는 만큼 판매량을 늘리지 못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수입자동차의 판매 붐에 따라 우리 대리점도 한껏 고무되어 있었으나 대리점의 모회사인 가라벨로 그룹이 소유한 다른 사업부문이 부실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현대자동차 사업에 유동성 문제가 생기고 끝내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 수입차 수요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우리 현대자동차만 대리점의 부실로 판매를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고기 반 물 반의 호수에 낚싯대를 잃어버린 꼴이되고 결국 낚시를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