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7일 토요일

연료전지 자동차 Riversi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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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자동차블로그에 나온 것을 요약하여 올린다. 오늘 런던에서 처음 소개된 Riversimple fuel cell car은 수소연료 차가 지켜야 할 것으로 기대했던 여러 가지 고정관념을 깼다.

첫째, 이 차는 일반 보통 차의 대체 차가 아니라는 것. 그 대신 아주 작은 2인승 차이다.
둘째, 보통 디자인과 제작에 관한 소유권의 비밀은 공개적으로 모집된 것으로 모든 설계와 정보는 온라인으로 무료로 공개될 것이라는 것.
셋째,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이 차는 가격이 싸다는 것이다.

Riversimple에 사용될 연료전지를 개발한 회사 Horizon Fuel Cell Technologies에 따르면 이 혁신적인 차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월 200파운드($315)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것을 다른 유사한 선진 기술과 비교한다면; 예를 들어 Mini E는 일 년간 월 $850에, Honda FCX Clarity는 3 년간 월 $600 리스 비용이 든다. 물론 이 차들은 각기 다른 차이긴 하다. Mini E는 다른 기술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지갑을 들고 딜러를 찾아갈 때 $850짜리 차보다는 $315의 짜리 차를 선택할 것이다. 
Riversimple는 2013년 부터 리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 차는 1kg의 수소탱크 가득 채우면 6kw의 연료전지가 있기때문에 240마일 범위를 주행할 수 있으며, 50mph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이 효율은 개솔린 1 갤런으로 300km를 주행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Once upon a time 31<사장 수행 출장>

첫 남미출장을 사장 수행으로

사장님이 페루 리마에 머무는 동안 대리점 후보에 오른 사람이 사장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대리점 후보의 집은 집 둘레에 높이 삼 미터는 족히 되는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총을 들고 경비하는 사람이 열어주는 큰 대문 안으로 차를 탄 채 들어가자 널따란 정원이 펼쳐진다. 집안으로 들어가 거실에는 파일이 발등을 덮을 정도의 푹신한 카펫이 깔려있다. 참 호화스러웠다. 성북동 사장님 댁에 행사가 있어 한두 번 가봤지만, 그보다 훨씬 크고 호화로운 것을 보고 놀랐다.

페루는 아직 사회주의가 만연해서 국민 대다수는 사회주의자라고 했다. 페루 국민의 90퍼센트가 저소득층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극빈자라는 소리를 들은 일이 있다. 이들은 정부의 보조로 겨우 연명하는 계층이다. 이런 빈곤층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빈곤층과의 갈등은 없을까? 그래도 이들은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돈 많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을 편 가르지 않고, 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점이었다.  길거리에는 좌판 위에 별것도 아닌 것을 놓고 장사를 한다. 우리나라 60년대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나마 이들은 장사하지만 대부분 인디오들은 길거리에서 하릴없이 방황한다. 그리고 틈만 있으면 남의 물건을 훔치던가 소매치기를 일삼는다.  길거리 소매치기는 한자리에 서 있으면 한 시간에 몇 차례를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주의하지 않으면 주머니 속에 있는 것도 언제 없어지는지 모르게 남의 물건이 된다.

그 사람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밥만 먹을 수가 없었다. 다그쳐야겠다는 생각에 언제까지 생산 오더를 확정하겠느냐고 물었다. 초기 페루시장에서 현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초기 마케팅계획을 주말까지 초안이라도 내놓으라고 잘라 말했다. 그 사람은 유태인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사람들 상술은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졌기 때문에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생략하고  좌우지간 우리를 갖고 놀려는 싹을 잘라 버리기로 했다. "나는 예하면 예고 아니만 아니다. 확실히 하자!"고 말하는 것을 사장님에 들었다. 식사끝나고 호텔에 돌아오는 차에서 나한테 말한다. "그래,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그렇게 다그쳐서 말 듣겠어?라고 하신다. 나는 그뜻이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더 세게 밀어부치라는 건지 아니면 달래서 하라는 건지. 그후에 나는 그 유태인을 후보 리스트에서 삭제해버렸다. 다른 사람을 결국 선택한 것이다.

사장님 일행 중남이 경제협력팀은 페루에서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옮겼다. 칠레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칠레 대리점 사장인 마중을 나왔다. 대리점 사장은 깊은 생각 끝에 '본사에서 사장님께서 왕림하시는데 포니로 모실 수 없지 않은가, 큰 차를 가지고 마중 나가야지' 아마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차가 대기하는 데로 대리점 사장이 안내했다. 사장님은 대기하고 있는 차를 보고 대뜸 화를 내는 것이다.  당시 칠레 대리점은 우리 현대 뿐만 아니고 일본 미쓰비시 대리점도 하고 있었다. 미쓰비시가 생산한 포니보다 큰 차로 모시겠다는 충정을 우리 사장님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차에 타고 호텔로 가는 차안에서 하시는 말씀이 다짜고짜 "대리점 바꿔야겠어." 하신다. 대리점 사장이 우리 말을 못 알아듣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얘기라 생각했는지 내 눈치를 본다. 내가  뭐라겠는가, 그의 눈을 피하고 시침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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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닛산 미국에서 EV 생산계획

우리나라는 어떤가? 친환경 차 관련 기술이 아무래도 일본 보다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Once upon a time 30<남미지역 담당 발령>

지역은 A급 지역이요.

1980년 이름 봄이었다. 중역회의를 끝내고 돌아온 해외사업부장(지금의 해외영업본부장)이 나를 찾는다고 비서한테서 연락이 왔다. 당시 나는 기회조사과(지금의 해외 마케팅부과 비슷)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사업부 각 부서의 사업계획과 수출실적을 점검하고 보고한다. 동시에 신시장 개척에 관한 일에 많이 몰두하고 있었다. 기획조사과장으로 있으면서 북미시장의 전초기지 캐나다 시장 조사를 시작했던 것도 이때였다.

1980년에는 현대자동차 사옥은 번듯한 것 하나 없었다. 광화문의 현대건설 빌딩에 세 들어 살다 현대건설의 해외 수주로 사세가 확장하면서 비좁아지자 현대자동차는 종로구 계동에 있는 옛 휘문고등학교 건물로 밀려나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휘문고등학교 교사는 현대그룹이 사들인 것이다. 전통적인 목조 학교건물의 교실 사이의 벽을 허물어 내고 기다란 사무실로 쓰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주 오래전 일 같지만 불과 30년이 안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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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초여름 어느 인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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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ix LX3로 셔터 우선 모드로 여러장 시험해본 것중 하나입니다.

2009년 6월 16일 화요일

GM을 앞으로 뭐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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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파산으로 생긴 수많은 질문 중 하나는 Chapter 11에서 벗어난 후에는 회사 이름이 그대로 남을 것이냐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GM을 Government Motors로 비아냥거리며 부르고 있는데, 이 회사의 CEO Fritz Henderson은 이런 이름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떠들썩한 고뇌 속에서 생각한 것은
Detroit Free Press GM이 정말로 회사 명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기사 일부를 보면 ...

Now, [a name change] also could be a sign to consumers that this really is a new, different enterprise. But GM's immediate challenge will be selling vehicles such as the Chevy Volt that were clearly conceived and designed by the current company, warts and all.
 
요즘 GM을 가장 일반적으로 부르는 이름은 "New GM"이다. Free Press는 GM은 그대로 GM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으로 믿고 있다. 만약에 회사명이 바뀐다면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Volt가 새로운 회사의 브랜드로 사용될 것이라는 것. 새 회사에 새로운 형식의 제품. 걸맞지 않은가?

2009년 6월 14일 일요일

Once upon a time 29 <아프리카 렛슨 No.1>

얘기가 왔다 갔다 하지만 신경 쓰시지 말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메모해 놓지 않아,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것을 써 내려가기 때문에 시공의 순서가 바뀌어도 연속성을 요구하는 게 아니어서 문제될 것 없으니까요.

비행기 수하물은 본인이 직접 챙겨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이이보리 코스트 아비잔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체킨을 하고 아무리 비행기 탑승안내를 기다려도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없다. 더러 무슨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와도 윙윙거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궁금하고 내가 못 들었을지도 몰라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어보기도 했다. 아직 연결편의 도착이 지연되는 바람에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렸을까? 마침 탑승 안내방송이 스피커로 통해 나온다. 오디오 시스템이 나쁜지 아니면 내가 듣는 실력이 부족했던지 무슨 소리인지 신경 안 쓰고 탑승하라는 말만 듣고 그냥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아이보리 코스트 아비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날씨는 무지 더웠다. 찐다. 땀이 뻘뻘 흘러 가슴팍으로 내려온다. 배기지 클레임 싸인을 따라가 짐을 기다렸다. 내 쌈소나이트 트렁크가 나오지 않는다. 나와 같은 비행기로 온 사람들은 모두 짐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황당하다. 내 짐이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공항 화물 분실 신고 담당을 찾아가 비행기 표에 붙여준 짐표를 보이면서 내짐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신고를 했다. 다음 날 전화해 보라는 담당자 말을 듣고 밖에서 기다리는 우리 정비담당 직원이 몰고 온 포니를  타고 호텔로 갔다. 아직 시간이 있어 호텔 앞 우리나라 공관에 찾아가 도움을 청할까 했다. 참 부질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타고 온 항공사 대리점에 찾아갔다. 화물 분실한 것을 자초지종 설명하고 꼭 찾아 달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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