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다시피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나라다. 탱고의 나라인 아르헨티나과 우루과이는 다른 남미 여러나라 국민들과 다르다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느꼈다. 어딘지 모르게 배타적인 것 같았다. 표정도 밝지가 않았다. 남미의 다른 나라 같지 않고 이곳은 사람들은 친절한 것을 느낄 수가 없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지만.
이 나라 경제 상황으로 봐서 자동차 판매가 늘어날 기미는 찾기 힘들었다.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 비데오에 갔다. 땅 면적은 작지만 일찍이 스페인과 이태리등의 영항을 많이 받아 시내의 건물들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았으나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동안 도로에 운행되는 승용차들이 적어도 몇십년 이상은 됐을 것 같은 옛날 차종이였다. 박물관에 있으면 딱 맞을 차들.. 그러니까 영화 '보니 앤 클아이드'에서 두 남녀 강도들이 몰고 다니던 1930년대의 그런 차들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였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듣던 품질 문제와 선적 지연 문제를 제기하며 본사의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자동차를 주문해서 대금 결재로 신용장을 개설하고 나면 대리점이 보유하고 있는 신용 대출의 한도를 다 써버리기 때문에 자금의 유동성이 어려워 진다는 것이다. 자금의 회전이 안된다고 했다. 신용장을 개설하고 자동차가 반년 가깝게 걸려서 도착한다면 일년에 몇번 장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였다. 맞는 말이다. 나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최대한 노력해서 여러가지 개선을 약속했지만, 하염없는 한숨만을 혼자서 내 쉬었다.
몬테비디오에는 우리나라 원양어선이 잠시 기항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 식당도 있는데 보잘 것 없지만 우리 음식을 먹는 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장기 출장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가게 쇼원도에 전시된 물건마다 붙어있는 가격표에는 동그라미가 보통 대여섯 개가 그려져 있거나 숫제 가격이 미국 화폐 단위인 달러(US$)로 표시되어 있었다. 자동차 같은 내구성 상품은 아예 활부가 불가능 할 정도였고 자국 화폐의 가격은 없었다.
그동안 남미를 담당하면서 여러나라를 방문 상담했었지만 이들 나라들의 고질적인 상상할 수없는 높은 물가 상승이었다. 즉 엄청난 인플레이션이었다. 이런 불안정한 경제사정으로 내가 담당하고 있는 동안 남미에서의 판매는 지지부진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대리점이 현대에 생산 오더를 발송하고 차를 인수할 때 쯤이면 이미 반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다. 생산 선적의 물류 시스템이 미비된 상태에서 공장의 생산성 위주로 생산하다 보면 수주된 자동차 생산이 완료되기 까지는 칠 팔개월이 걸리는데 다반사였다. 그 동안 환율은 올라 발주당시와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수입비용은 엄청나게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경제 블록화되고 있는 남미 여러나라의 역내에서 생존하는 길은 높은 관세장벽을 넘어야 한다. 대리점에는 너무 긴 자동차 발주에서 입고까지의 리드타임을 단축시켜야한다는 해결의 열쇠를 찾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립공장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이 굳어졌던 것이다.
리스크가 없는 기업이 어디있겠습니까? mark님 같이 현장에서 리스크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계셔서 지금의 현대 자동차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답글삭제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gemlove - 2009/09/29 15:25
답글삭제무슨 과분한 말씀을 하시는지..
@Anonymous - 2009/09/29 16:02
답글삭제방명록에 회신 올렸어요.
가끔은 그렇더라구요, 왜 먼저 알아주지 못했나.. 라고 ^^;
답글삭제나도 의외로 생각했다고 했는데, 실체와 맞딱뜨리고 나면
내 시야가 이렇게 편협했나 싶기도 하구요.
누군가에게 무언갈 요구하기전에 그 사람들의 요구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랄까요!?
경험담을 들려 주시니 더 살아있는 글 같아서 읽으며 좋았습니다~
하아..지금 이시간에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답글삭제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경제를 끌어올려주시는 수많은 가장들!!
파이팅입니다! 대한민국 코리안! 만세! >.<
@kei - 2009/09/29 18:04
답글삭제30년 전의 얘기이니까요 격세지감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생각나는대로 토막토막 잘려서 연재로 올립니다. 그냥.
@악랄가츠 - 2009/09/29 19:15
답글삭제지금이야 Korea 하면 대부분 알겠지만, 그 때는 "한국에서 자동차를? 웃기네" 뭐 이런거 였으니까요. 아이구 피곤해.
30년 전이면...
답글삭제포니가 나오기 전 아닌가요?
제가 현대 포니2를 처음 구매한것이
1983아니면 1984년도 정도 될것 같은데...
기억이 워낙 흐릿해서 ㅎㅎㅎ
여튼 그전이라면 남미쪽 영업은 거의
힘든 시기였을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무척 힘든 시기 였으리라는 ....
잘보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몇일 동안 글을 많이 올려주셨군요
답글삭제이제야 쭉 다 봤습니다. ㅎㅎㅎ
추석 선물와인을 빨리
올려 달라는 요청 때문에 몇일 고생한다고 ㅎㅎㅎ
독타에 심한 당뇨라 컴에 계속 않아 있을 수 없는 처지라 ㅋ
잘 이해 해주시길 바랍니다. ㅋ
물러갑니다.
@영웅전쟁 - 2009/09/29 19:34
답글삭제아르헨티나 이야기는 1980년 얘기입니다. 아직 Pony1으로 장사할 때였지요. 낮은 인지도와 저질의 품질 문제로 고생 많이 했지요.
@영웅전쟁 - 2009/09/29 19:38
답글삭제저도 비슷합니다. 거의신금하네요. 답하시기 싫으시면 안해도 됩니다. 어떤 인연으로 그렇게 와인에 달인이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건강 유의하세요. 추석 잘 보내시구요.
아르헨티나는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나아졌을까요?^^;
답글삭제@띠용 - 2009/09/29 20:33
답글삭제잘은 모르겠지만 옛날 같겠습니까? 좀 나아졌겠지요. 제 경험으로는 이 지역은 3년연속 경제호황을 보지 못했습니다.
1980년,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한 중학교 친구를 한동안 매일 가방을
답글삭제들어주면서 등교 한적이 ...그때 동네 PONY 자가용 기사 분이학교 까지 가끔 태워준 기업이 아직도 선명 // 와 그리 부럽던지 ㅎㅎㅎ
그때만 해도 정말 부러움의 대상이었죠
@윤영창 ( jack) - 2009/10/09 01:11
답글삭제1970년대에는 서울에 돌아다니는 승용차 대부분이 택시였지요, 자가용은 어쩌다 보이는.. 그래서 자가용 가진 사람들 (그땐 자가용 족이라고 불렀지요)보면 부럽기만 했던 시절이었네요.
1977년으로 기억 됩니다 .. 기억의 오류 ,,
답글삭제mark님이 1970년도 이야기 하시니 새삼 기억이 나네요 ..
비오는날 포니안에서 습기가 차서
실내 에어콘으로 제거하고 시원한 느낌이 정말 신기 부러움 그 자체!!
지금은 에어콘 기본사항이지만 , 그당시 에어콘은 큰 옵션사항으로
압니다...ㅎㅎㅎㅎ
@윤영창 ( jack) - 2009/10/09 10:57
답글삭제그야말로 Once upon a time story 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