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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2일 토요일

GM 대우의 수난

 
처음 창설 당시의 회사명을 바꾸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주인이 바뀌면서 또는 회사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이름을 바꾸는 회사를 종종 주위에서 본다. GM Korea 창설 당시에 그회사에서 근무했던 나로써는 GM Daewoo가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감이 교차한다.

GM Daewoo라는 이름에서 Daewoo를 떼어내고 GM Korea로 바꾼다고 한다. GM 대우자동차는 그동안 숫한 곡절이 많았다. 1972년에 당시 도요타의 코로나(Corona)를 조립 생산하던 신진자동차는 미국 General Motors 와 합작회사를 설립 GM이 한국에 진출하는데 교두보가 되었다. 회사 이름은 GM Korea. 이 회사는 오스트랠리아의 GM Holden, 필리핀의 GM Philippine과 독일 Opel 에서 수입한 CKD로 시보레 1700 소형 승용차와 Rekord 중소형 승용차를 조립 생산했고, 상용차로는 일본의 Isuzu로 부터 엔진 트랜스밋션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중형 트럭과 버스를 생산하였다. 
 
이렇게 1972년 GM Korea는 시보레 1700 (Chevrolet - 쉐브롤레이 가 원음에 가까운 발음) 이라는 엔진 배기량 1700cc의 소형 승용차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한다. 당시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 규모는 연간 만대가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규모였으며 소형차로 배기량 1700cc는 한국의 자동차 시장을 잘 모르고 한 선택이었다. 엔진이 소형급으로는 컸을 뿐만 아니라 당시 택시 수요도 일년에 몇 천대 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시장이었다. 게다가 계속되는 심각한 품질 문제에 불만인 고객들의 막가파식으로 항의하는 고객때문에 GM Korea 본사 정문앞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한번은 현관 앞에 고장난 시보레1700택시를 트럭으로 싣고와서 세워놓고 불을 지른 일도 있었다.
 
시보레1700 이 출시된 다음 해 1973년에 중동에서 불어온 제 1차 오일쇼크로 온세계 경제는 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바람에 시보레1700 은 경쟁사 기아자동차 브리사 1000cc에 눌려 맥을 못추고 GM Korea는 생산을 중단해야 될 정도로 심각한 재고 누적에 고심하게 된다. 이미 수입된 CKD 재고 소진을 위해 시보레1700을 디자인을 바꾸고 차명도 바꾸면서 안간 힘을 쓰지만 판매가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외국자본이 들어온 합작회사 GM Korea는 미국 GM 본사에서 파견된 임원들이 경영을 맡으면서 한.미 문화의 차이로 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혼란기에 접어든다. 판매는 부진하고 급기야 낙하산 투하식으로 임명된 퇴역장성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회사 직원들은 모럴 해저드에 빠지게 되며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그리고 나는 이런 회사는 비젼이 없다고 보고 1977년 3월에 GM Korea를 떠나고 현대자동차 해외영업부로 자리를 옮긴다.
 
 
이런 혼란속에 2-3년이 흐르자 GM Korea는 과거 신진자동차 시절의 한국 제일의 자동차회사의 위치를 현대자동차에 빼았기는 수모를 당한다. 현대는 순수 국산차 포니를 개발하고 있었고 1976년에 국내시장에 판매를 시작하게 된다. 순수 국산차 ... 당시 한국에서 생산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는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해서 국내에서 조립 생산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국산차라는 것은 없었다.

이렇게 GM Korea는 판매가 부진하자 외국 회사라는데 국민의 반감 때문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결단을 내고 회사 이름을 우리말로 바꾸기에 이른다. 새로 지은 회사 이름은 새한자동차. 아마 새한자동차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않을 것이다. 새한자동차는 대우그룹이 GM의 파트너가 되면서 회사 이름은 GM 대우자동차로 바뀌었기 때문에 오래 사용되지 않았던 이름이다.
 
새한자동차의 미국측 파트너 GM은 판매 부진으로 여려워진 상황에서 GM측의 새로운 파트너로 대우그룹을 받아들인다. 새로운 합작 파트너가 된 대우그룹은 GM 대우가 생산한 자동차를 수출하고 싶은 김 우중 회장의 뜻과는 달리 GM은 해외 수출을 금지하고 국내에서만 판매하도록 하는데 불만이었다. 그는 파트너 GM의 지분을 몽땅 인수하겠다는 마음으로 GM 측과 고의적인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엔) 갈등으로 불편한 관계를 10년 넘게 이어 간다. 급기야 GM은 나머지 지분을 대우에 넘기고 한국에서 철수해 버린다.
 
김 우중 회장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고 회사 이름도 대우자동차로 바꾼다. 이제 마음 껏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되면서 수출의 선두주자인 현대차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충돌하게 된다.

그는 처음 자동차회사를 인수하고 자동차 회사 경영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기자들에게 한 말이있다. 그는 원래 섬유제품으로 시작해서 대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와이셔츠 쎄일즈맨이라는 닉네임이 늘 붙어 다닐 정도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자동차 생산도 와이셔츠 만드는 거나 다를 게 없다. 마구 찍어내면 되는 게 아니냐는 말로 자동차 업계 적어도 현대자동차에서 오래 동안 산전 수전을 경험한 사람들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대우는 그러나 자동차 회사로써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 신제품 개발이 여의치않게 되자 일본 닛산 자동차에서 수입한 KD(Knock Down)부품으로 국내에서 아카디아라는 이름의 중형차를 조립 생산하고, 제 2 차 기름값 파동에는 일본 스즈키에서 경차를 카피해서 경차 티코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등 자동차 국산화를 지향하는 현대자동차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계속한다. 이렇게 하면서 제품의 경쟁력은 신차를 계속 개발해온 현대차에 큰 차이로 떨어져 열세로 밀리면서 회사의 경영난은 시작된다. 대우자동차는 재정난에 휘말리게 되고 채권단 손으로 넘어가면서 대우의 김 회장은 무역거래법 등 위반 혐의로 회장직에서 물러나 해외로 도피, 유랑생활을 해야하는 불운을 맞는다.

그러면서 대우는 다시 GM의 손으로 돌아갔지만, 회사 이름은 혹시라도 우리 국민의 거부감을 두려워서 였는지 GM 대우자동차를 계속 유지한다.  

GM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경영해왔으나 사정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을 GM의 아시아지역 소형차 생산기지로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GM 대우 수출 차에 적용하던 시보레 (쉐브롤레이) 엠블렘을 GMGM 대우에서 생산하는 국내외용 모든 차종에 아예 엠블렘을 바꿔 시보레 보우타이를 달아주고 회사 이름도 GM Korea로 바꾸기로 했다. 이제 우리나라 시장 규모가 GM한테 중요한 시장으로 부각됐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개발 생산기술이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심기일전 싸워보겠다는 전략인 것 같다.

1966년에 창설된 신진자동차가 합작회사로 변신하면서 1972년에 GM Korea를 설립하여, 1976년에 새한자동차로 이름을 바꾼다. 1978년에 한국측 파트너가 바뀌면서 GM 대우자동차는 10년 넘게 한.미 주주 파트너간 갈등 끝에 GM은 포기하고 물러난다. GM 지분을 인수한 대우그룹은 회사 이름을 대우자동차로 바꾸지만, 상품의 경쟁력이 없는 대우자동차는 판매부진으로 재정난에 대우그룹 지분은 채권단으로 넘어간다. GM이 채권단으로 부터 지분을 인수해 그동안 GM 대우자동차로 기사 회생시켰다. 이제 General Motors의 단독 소유로 돌아가면서 다시 GM 대우의 '대우'를 떼어내고 GM Korea로 회귀하는데 34년의 결론인 것이다.



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Once upon a time 61 <Mrs. Britingham>

내가 학교 다니면서 배운 영어는 중학교때는 영어 교과서에 밑줄쳐 가면서 단어를 외우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단어를 엮여 문장을 만들 줄도 모르고 영어로 말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시험때 시험지에 빈칸 채우기 문제를 위한 공부가 다 였다. 고등학교 일학년때 영어 선생님은 언제나 무조건 한과를 통째로 암기해 오는 숙제를 내줬다. 모두 암기해야 했고 수업시간에 재수가 없어 걸리면 일어서서 암기한 것을 외워야 했다. 한 줄도 못 외웠을 경우는 회초리로 손바닥이 불이 나도록 맞았다.  내가 제일 싫어한 과목이 영어였고 영어선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은 일정 때 일본인 영어 선생한테서 배운 영어였던지 발음이 형편없이 나빴다. 예를 들어 "What is that?" 을 "왓도 이즈 닷도" 정도로 발음을 했다. 액센트도 없고 인토네이션도 없었다고 기억된다. 그래도 외워야 했다. 발음은 어쨌든 관심없다. 이런 선생님 밑에서 영어를 배웠으니 원어민 선생님이 말하는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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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7일 금요일

세롭게 변모한 세종로

기아자동차에서 부사장으로 퇴임한 신 도철사장이 중국의 모 회사 총경리로 초빙되어 오는 8월10일 중국으로 떠난다. 그를 위해 점심자리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편 샤브샤브집에서 가졌다. 식사후에는 새롭게 태어난 세종로를 돌아보았다. 구경 나온 사람들 표정이 모두 밝아 보인다. <아래사진 품질이 안좋다.>

Mr. Shin Do-chul, former EVP & COO of Kia Motors plant is recently hired by a Chinese  company as CEO. He is leaving Korea on August 10 to get his new job in China. I invited him and other former colleagues for a lunch at a restaurant near Sejong-no, the center of old Seoul. As you might have noticed to see the pictures below, the street was completly renovated and the central reserve area of the broad avenue became a public park.

앞에 보이는 동상이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동상 밑으로 터널이 생겨 그 안에 해치광장이 있어 볼거리를 전시해 놓았다.

Under the statue of the Naval Admiral Sunshin Lee of Yi dynasty, the Seoul Metropolis built an underground exhibition hall to display various historical records of city Hanseong - old Seoul of the dynasty.

이곳에서 데모를 하겠다는 건가? 그런 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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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30일 목요일

Once upon a time 40<수입관세는 하루 아침에>


이때는 현대자동차가 엑셀의 후속 차종으로 액센트(Accent)를 개발하여 수출을 시작하였을 때였다. 새로 대리점 선정 과정이 끝나 레지날도 레지노가 현대차로 지정되었다. 대리점이 약속한 사업 계획대로 초기 생산 오더를 접수하여 울산공장에 생산 의뢰를 위해 스펙을 점검하는 순간에 본사 마케팅 담당자가 브라질 사양 개발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브라질 사양이 개발되지 않은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 동안 브라질 첫번째 대리점의 판매실적이 부진했던 결과로 엑셀이 단종 (페이스 아웃-Phase out)되는 단계에서 브라질 특유 사양의 잔여 부품 재고를 처리하지 못하고 해외영업본부에서 골머리를 앓았던 일이 있었다. 이 때문이였는지 아예 신 차종 액센트의 브라질 사양 개발은 제외한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러 놓은 것이다.

 

브라질 사양이라는 것은 브라질이 엄청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있어 여기서 수확한 사탕수수에서 채취한 알콜을 휘발류에 첨가하는 브라질 특유의 대체 원료인 것이다. 이 때문에 알콜 함량이 많은 연료로 파이프라인이 부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내산성을 강화한 파이프등 연료계통 부품의 재질은 일반 사양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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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5일 수요일

소개

전명헌 사장은 정통 해외 영업맨 출신으로 70년대부터 해외 시장 개척을 하며 자동차 수출 전문가로 활약했다.

현대자동차 미국 현지법인 재직 중이던 98년 말, 품질 문제로 미국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존의 고객 유인 전략인 ‘인센티브 제공’, ’가격할인’ 등이 한계에 부딪쳤을 때,
’10년10만 마일 Warranty’ 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 자동차 대미 수출 판도를 바꾸어 놓은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98년 가을에 가진 딜러 미팅에서 였다. 연례행사인 딜러 미팅은 후속 차종과 이듬해인 1999년형 차종과 미래의 상품계획을 소개함과 아울러 마케팅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이다.  그 당시 전명헌사장이 미국 현지 딜러를 대상으로 새로운 마케팅 전략과 10년 10만마일 워런티가 포함된 딜러
지원 계획을 내놓던 순간, 딜러 대표들은 “바로 이거다(This is it)” 하며 5분간 기립박수를 보내었고,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로 현대차의 품질의 약점을 한꺼번에 믿을 만한 자동차로 이미지를 바꾼 강력한 메시지였다.

 

미국 소비자들은 현대를 다시 보게 되었고, 이들의 기대대로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자동차 판매량은 그야 말로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약 11년이 지난 지금도 활용되고 있으며, 이것이 곧 대미(對美) 수출 물량 증가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고, 세계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품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 현대차의 판매 신장의 모멘텀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의 이러한 해외 마케팅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기질은 그가 현대· 기아차 이후 몸담았던 현대종합상사의 혁신에도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실제로 현대종합상사는 그가 CEO로 부임한 이후 놀라운 성적을 나타냈다. 자사 제품이 없는 종합상사의 약점을 불식시키기위한 그의 경영전략 능력은 중국의 청도조선소를 인수하여 조선업에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마케팅 능력을 기반으로 한 수익원 확충 및 비즈니스 모델 개발, 조직 및 인력 운영의 효율화 등으로 현대종합상사는 2004년도에 매출 1조7천962억원에 영업이익 251억원, 경상이익 345억원, 당기순이익 345억원을 달성하여 4년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는 개가를 올렸으며, 2005년과 2006년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2006년 12월 25일자 중앙 일보 는 전 명헌사장을 6000억 적자 회사를 5년만에 흑자로 전환, 빚더미 회사를 살린 구원투수라고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