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는 Project i program을 진행 중이다. Clever는 이륜, 삼륜, 사륜차로 이루어지는 차종 중 하나이다. 완전한 전기차를 보기를 원하는 만큼 당분간은 기다려야 할 거 같다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BMW 대변인은 "우리는 수퍼이코너미 차 또는 제로 에미션 자동차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양산된 차가 도로에서 주행하는 데는 앞으로 5년 정도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Mark Juhn's Blog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에 알림으로써 일상 생활에서 필수교통수단을 어떻게 선택하고 현명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테리부르, 베리 테리부르
시에라 레온은 특별한 추억이 있다. 시에라 레온은 영어로는 라이언 마운틴이라고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이 가르쳐주었다. 사자산. 이곳에 처음 출장으로 - 다른 나라도 다 처음 출장이지만 -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 나라 수도인 후리타운까지 가는데는 자동차와 배를 이용해야 했다. 후리타운은 공항에서 보았을 때 커다란 강하구 건너편에 있고 자동차로만 가기에는 엄청난 거리를 돌아야 했기 때문에 도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수백 명은 족히 될 승객을 태우고 30여 분 페리로 강을 건너고 있었다. 나 같이 생긴 동양 사람이 나한테 접근하면서 "곤 닛치와"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걸어온다. "쏘리, 아임 어 코리언" 이라고 대답해도 저쪽에서 이어 말을 걸어왔다. 되게 심심했던 모양이다. 영어 발음은 일본인들 특유의 형편 없는 발음으로 계속 뭐라고 이어갔다. 이곳은 몇번 왔었고 전자제품을 파는 세일즈 맨이라며 자기소개를 한다. 상당히 붙임성이 있어 보였다.
우리가 탄 페리가 후리타운 부두에 도착할 무렵 그 일본인이 갑자기 "후리타운 이즈 테리부루, 베리 테리부루"라고 했다.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어 "베겨 파든?"하고 물으니 후리타운이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소리였다. 지난번 출장 왔을 때 길거리에서 노상강도한테 골목 길에 끌려가서 주머니 다 털리고 심지어 벨트까지 빼앗겼다고 말했다. 사실 현대자동차 아프리카 담당 직원도 태권도 유단자였지만 이곳에서 대낮에 대로에서 방망이로 뒤퉁수를 맞고 졸도, 소지품을 몽땅 털린 일이 있다. 나는 일본 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 바람에 일 끝나고 시내 구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는 혼자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을 밤에 구경을 나가기도 했는데 그 말을 듣고는 도저히 혼자 나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배가 정박하자 보따리 장사하는 사람들인지 모두 엄청난 크기의 짐을 머리에 얹고 배에서 내리는 모습이 꼭 전쟁 피난민 행색이었다. 나는 공항에서부터 대리점 직원이 동행했기 때문에 안심이 되었지만, 그 일본인은 혼자였다. 어느 호텔에 묵을 거냐고 묻고는 나를 마중 나온 대리점 직원한테 호텔까지 태워 줄 수 없겠냐고 물어 양해를 얻고 호텔까지 태워주었다. 아프리카 시장을 담당하고 있기때문에 아프리카는 거의 안 가본 나라가 없다고 했다. 일본은 이미 수년전 부터 아프리카 시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시장개척을 해온 것이다.
그래도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일본인 젊은 세일즈맨이 그 영어로 어떻게 의사 통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그 친구와 나는 한동안 안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의 영어 문장 실력은 나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1978년 이곳을 딱 한 번 방문하고 30년이 지났지만, 그 후로 나는 한 번도 다시 가보지 못했다. 그동안 얼마나 얼마나 발전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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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thly US sales of hybrids. Click to enlarge. |
쌍용 종합상사 -1
1970년대 우리나라 종합상사 중 하나인 주식회사 쌍용은 현대자동차 대리점권을 획득하여 포니 자동차를 가봉으로 수입해 판매하고 있었다. 쌍용이 가봉의 수도 르브레빌에 백화점을 지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르브레빌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제법 높았고, 남한보다 북한과 국교를 먼저 맺었만, 친한 파들도 꽤 많았다고 한다. 한국의 주요 기업이 투자하여 현지인을 고용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남한보다 일찍 수교를 한 북한의 영향을 받았던 가봉에 한국의 진출은 일종의 모험이었을 만도 하다. 가봉의 국경일에 맞춰 북한의 김일성은 수십만 개의 봉고 대통령 뱃지를 무상공급해 북한에서 하는 것처럼 사람들한테 가슴에 달고 다니도록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김일성이 국민으로부터 숭앙을 받는 요령을 가르쳐주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뱃지를 달고 다니는 가봉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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