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7일 금요일

Once upon a time 8 <맞으면서 배운다>

1970년대에는 팩스는 이제 막 실용화 시작 단계였고, 인터넷은 없던 시절. 텔렉스가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면 밤새 도착한 텔렉스를 통신실에 찾아가서 수신된 내용을 꼼꼼히 점검한다. 오늘은 또 어떤 문제가 터졌나 하는 조바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새벽에 출근하는 정세영 사장님께서 해외에서 들어온 텔렉스를 먼저 읽고는 대리점의 불만이 있으면 담당자들이 불려가 혼나고 나오기 때문이다. 이래서 모든 부서장은 서로 경쟁하듯이 먼저 출근하여 텔렉스를 점검하고 문제에 대한 이유와 해결 방안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가 호출되는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맞으면서 배운다

잔뜩 긴장하고 대리점 사장실에 도착하여 사장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대리점 사장은 이름이 쉐이크, 이름 앞에 쉐이크라는 호칭이 붙어 있는 것은 왕족이라는 것인데 이 사람도 그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사돈의 팔촌 정도나 되나?

본격적으로 회의기 시작되었다. 대리점 사장은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부품담당자가 방문해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발주한 부품이 아직도 선적되지 않아 고장 난 자동차를 수리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부품이 없어 고객에게 판매 대기 중인 차에서 부품을 떼어다 수리를 한다고 했다.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부품을 떼어낸 차들을 나한테 보여주며 현실을 확인시켰다. 이렇게 백오더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더니, 이어 주문한 부품이 잘못 선적되어 쓸모없는 부품이 싸여 있다거나 선적된 부품의 과부족 발생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문제가 한꺼번에 내 앞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미 예견된 불만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뭐라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한다면서 아프터 서비스를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본사가 원망스럽기 조차했다. 대부분 불만은 선적 지연이였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해외부품부에는 아프터 서비스라는 개념이 없었다. 서비스부가 부품을 겸직하는 것쯤으로 생각했고 실제 부품카달로그도 정비를 맡은 서비스부에서 발간하고 있었다.

수시로 발생하는 설계변경에 따른 부품번호 변경도 부품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설계변경이 되면 구형은 신형에 사용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무도 그런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 부품본부가 갖추어야 할 기본조건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입사 후에 바로 간파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해외판매사업부장에 보고했었다. 해외부품부에는 부품을 조달하는 구매기능이 필요했고, 부품의 입고, 저장, 포장 출고 등 일련의 물류관리를 위한 창고와 인력 확보의 필요성에 대하여 매년 사업계획에 포함하여 건의했다.

 내가 1977년 3월에 해외 부품부의 상황이 어땠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해외부품부의 부서장은 차장이었다. 이 분은 마침 남미 출장 중이어서 면접 그리고 첫 출근하는 날도 대면을 할 수 없었다. 본사조직으로는 대리가 두 명, 사원이 두 명 그리고 기능직 여사원 한 명 이였고, 울산 공장에는 생산용 자재 창고의 한구석에 삼사십 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서 사무실 겸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입고 포장담당 직원인 기능직 사원이 열 두세 명이 있었다. 이게 전부였다.

해외 대리점에 공급해야 할 부품은 대부분 국산화가 되어 있었지만, 기능상 중요한 파워트레인 계통의 상당 부분은 아직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품부에서 직접 수입하는 것이 아니고 자동차 조립생산용 수입품을 관장하는 KD 자재부에서 차용, 분해하여 대리점에 선적하는 방식으로 임시변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대리점에서 요구하는 부품을 제대로 공급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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