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가 왔다 갔다 하지만 신경 쓰시지 말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메모해 놓지 않아,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것을 써 내려가기 때문에 시공의 순서가 바뀌어도 연속성을 요구하는 게 아니어서 문제될 것 없으니까요.
비행기 수하물은 본인이 직접 챙겨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이이보리 코스트 아비잔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체킨을 하고 아무리 비행기 탑승안내를 기다려도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없다. 더러 무슨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와도 윙윙거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궁금하고 내가 못 들었을지도 몰라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어보기도 했다. 아직 연결편의 도착이 지연되는 바람에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렸을까? 마침 탑승 안내방송이 스피커로 통해 나온다. 오디오 시스템이 나쁜지 아니면 내가 듣는 실력이 부족했던지 무슨 소리인지 신경 안 쓰고 탑승하라는 말만 듣고 그냥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아이보리 코스트 아비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날씨는 무지 더웠다. 찐다. 땀이 뻘뻘 흘러 가슴팍으로 내려온다. 배기지 클레임 싸인을 따라가 짐을 기다렸다. 내 쌈소나이트 트렁크가 나오지 않는다. 나와 같은 비행기로 온 사람들은 모두 짐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황당하다. 내 짐이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공항 화물 분실 신고 담당을 찾아가 비행기 표에 붙여준 짐표를 보이면서 내짐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신고를 했다. 다음 날 전화해 보라는 담당자 말을 듣고 밖에서 기다리는 우리 정비담당 직원이 몰고 온 포니를 타고 호텔로 갔다. 아직 시간이 있어 호텔 앞 우리나라 공관에 찾아가 도움을 청할까 했다. 참 부질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타고 온 항공사 대리점에 찾아갔다. 화물 분실한 것을 자초지종 설명하고 꼭 찾아 달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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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 지점장이 이리 전리 전화를 해보더니 그날 저녁 비행편으로 온다면서 공항에 가보라고 한다. 그 지점장은 보통 아프리카 사람들과 달리 양복을 입은 게 점잖아 보였다. 그 사람은 나한네 "당신은 아프리카 레슨 원을 모르고 무모하게 다니고 있다." 라면서 한마디 해준다. 비행기를 탈 때는 자기가 체킨한 짐이 비행기에 실리는 지 자신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면서 두세 가지를 바라지 말라고 자조적인 충고를 해주었다.
불란서 식민지였던 이아보리 코스트(꼬띠 드 부아)는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들보다 도시 모양새가 훨씬 나은 듯했다. 수도 아빗잔의 메인스트리트 변에 있는 건물들이 마치 파리에서 본듯한 아름다운 양식의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씨에라 레온, 가봉, 카메룬의 거리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국토의 면적도 그들보다 컸고 도착할 때 공항 터미널 건물의 규모와 시설도 훨씬 크고 좋았다. 내가 머문 호텔은 빙상 게임을 할 수 있는 아이스 링크가 있었다. 열대지방의 아프리카에서 아이스 링크를 볼 수 있다는 게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설이 있는 호텔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물며 가난한 나라들만 있는 아프리카에서 그걸 보았으니 신기했다.
아이보리 코스트 대리점 사장은 연세가 높은 분으로 실제 경영을 맡아 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 보였다.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역시 전문성이 많이 모자란듯 했지만, 그보다 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았다. 나는 불어를 모르고 그들은 영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조금 하는 사람을 통역으로 여러가지 아젠다를 가지고 회의를 했지만, 나의 뜻이 얼마나 전달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내가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본사 수출 정비를 담당하는 대리 한 사람이 장기 출장으로 와 있었다. 현지에서 발생하는 자동차를 정비해 주고 품질 문제를 본사에 보고하는 임무가 그가 하는 일이었다. 이 사람이 이곳에서 몇 달째 체류하며 불어 몇 마디를 배운 것 가지고 내 뜻을 전달했으니 오죽했으랴 싶다.
이곳을 떠나기 하루 전날 시간을 내어 장기출장자가 해변으로 나를 안내했다. 질펀하게 넓은 해변은 우리나라 해수욕장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다. 우선 사람이 없다. 그 아름답고 깨끗한 모래사장에 겨우 몇 사람들이 나와 공차기를 하던가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평선이 한없이 긴 대서양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정말 외국에 온 것 같았다.
아프리카에 오면 사람들의 피부색이 검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느낀다, 모두 까맣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여자나 남자나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까만색 피부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동양상람인 내가 서 있으면 피부는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희다. 흑인 아이들이 신기한 눈으로 나를 보며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는 동양 사람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 같다. 동양 식당은 중국 식당이 더러 보일까 말까 했고, 간혹 일본 식당이 보였지만, 한국 식당은 눈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두달 동안 다니면서 한번도 한국식당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 한국은 이곳에서 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프리카인 열명한테 한국이 어디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열명이 다 모른다고 답할 정도였다. 이런데 와서 우리나라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를 팔겠다고 돌아다니는 우리나라 자동차 세일즈맨들이 무모하게 느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