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영업본부의 전신 수출판매부
지금의 해외영업본부는 처음부터 그렇게 거창한 조직으로 시작된 게 아니다. 그저 외국의 어느 자동차회사의 수출전담 조직을 대충 베낀 것 같은 그런 것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1977년 3월 2일 자로 현대자동차 경력사원으로 공채로 입사하고 보니 조직과 실제 맡아 하는 일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분히 부서장 간의 파워게임을 하는 것 같은 것을 보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서 해외시장 조사를 한다. 여러 후보 사 중에 가장 우수한 후보를 엄선하여 현대자동차 현지 대리점으로 지정하면서 대리점으로부터 수주한 자동차를 생산하여 선적하기까지의 관리 업무와 현지에서 판매된 자동차의 품질 보증 등 고객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합리적으로 업무가 배정된 조직이라기보다는 부서장마다 자기 업무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매일 업무영역 때문에 언쟁을 하는 일이 가끔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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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산 수출하여 판매된 자동차의 고객을 만족하게 하기 위한 조직과 그에 맞는 업무가 부여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자동차 수출인데다 이 분야에 경험 있는 사람도 없고, 역사도 없으니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말을 타고 가 먼저 말뚝 박는 데까지 자기 땅이라고 선언하던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그런 양상이 같기도 했다. 업무표준도 없었고, 각 부서 간 업무영역의 확장을 위해서 당시 분부장격인 임원한테 가서 아전인수격의 보고와 건의로 업무가 조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자동차 수출을 위해 설립된 조직에는 다음과 같은 부서들이 포진하고 있었지만, 겉 보기에는 그럴듯했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이건 내일이거든
수출기획부, 해외업무부, 회외판매부, 해외정비부, 그리고 내가 소속되어 있는 해외부품부 등 다섯 개 부가 있었다. 수출기획부는 매년 수출계획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부서다. 기획을 한다는 이유로 수출 판매부 내 다른 부서의 일을 하나도 빼지 않고 알고 싶어하고 간섭하는 그런 행태를 종종 보였다. 지금의 수출 기획실을 표방하는 임무였지만 초창기였기 때문에 자주 부딪치는 그런 양상이었다.
해외판매부도 막강한 파워를 누렸던 곳이다. 업무부는 수출용 차량 수주통계와 생산관리 및 선적을 관리하는 부서였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외판매부, 해외정비부, 해외부품부에 할당되어야 할 부서예산을 배분하지 않고 매달 타 쓰게 만들어 예산관리로 다른 부서를 장악하려 했다.
해외업무부장을 맡았던 부장은 목소리가 성우와 같은 미남형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와는 잊을 수 없는 몇 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그중 하나가 예산관리에 관련된 얘기다. 특히 부서 접대예산에 관한 얘기다. 접대예산은 업무추진을 위한 대외 접대에 필요한 비용과 직원들의 결속과 친목을 도모하는 단합 대회용 예산도 있다. 쉽게 말하면 소줏값이다. 그런데 이런 예산을 각 부서에 월별 배당하지 않고 독점관리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 불만이 쌓이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주 한 번 정도는 부서직원끼리 또는 업무적으로 관련 부서 직원과 퇴근 후에 소주 한잔하는 것이 관례였다. 식사비와 소주 값은 영수증을 달아 비용을 지급 요청을 한다. 요즘 같이 신용카드가 보편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개는 외상 장부에 싸인을 하고 나중에 결제되어 외상값 받아가라고 전화하면 득달같이 회사 사무실로 찾아와 돈을 받아간다.
이렇게 전표를 첨부해 비용을 청구하면 업무부장은 바로 결제를 하지 않고 미뤄두었다 안 되겠다는 듯이 과장들을 불러 모아 일장 훈시를 한다. 예산이 부족한데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쓰느냐는 둥, "당신은 퇴근 후에는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 같애." 라는 둥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도 서슴치 않고 했었다. 이렇게 그는 훤칠한 체격과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쫀쫀한 성격과 예산관리 스타일 때문에 인심도 잃었던 기억이 난다. 나쁜 성격은 아니었지만, 조직을 운영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매달 예산이 부족했다면 그것은 각 부서에서 비용이 지나쳤다고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예산이 부족한 것 아닌가 의심도 해보고 재정부와 협조해서 예산을 늘리는 것을 시도했어야 한다고 본다.
해외판매부는 신시장 개척을 위해서 노상 해외출장을 나가는 것이 일이었다. 신시장 진출을 위해서 시장 기초 조사와 대리점 후보를 물색하고 본사에 복수추천을 한다. 후보 사들 중에 최종 선정되는 과정은 본사에서 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본사 중역 또는 수출기회부장이라도 현지 사장을 가 보지 않고, 현지 시장 조사한 실무 담당자가 올린 내용 이상을 더 알리도 없다. 그런데도 수출기획부가 자주 브레이크를 건다. 대리점 선정을 서로 고유의 업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해외판매부는 모든 직원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말도 많아 다른 부서로부터 곱지 않은 눈으로 보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