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수난
이미 토요일 오후라 영사관은 휴무였지만 우선 위치부터 확인했다. 택시를 잡았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그리스 영사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왕 나온 김에 파리 시내를 구경하고 싶었다. 눈에 잘 띄는 개선문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파리시내에는 그다지 높지 않은 건물들로 에펠 탑이나 개선문 같은 랜드마크는 아무 곳에서나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시내구경을 위해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카메라는 아주 소형 카메라인데 출장 중에 휴대하기 편리한 것 같아서 샀다. 만약에 남몰래 사진 찍을 일이 있을 때 좋을 것 같았다. 성능도 그렇고 당시 독일제 롤레이 카메라의 브랜드 인지도만 믿고 샀는데 내가 산 모델은 그렇지 않았다. 잘 못 샀다.
혼자서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리며 찍고 있는데 직업 사진사가 나한테 다가와서는 찍어주겠다고 한다. 고맙다고 말하고 그에게 카메라를 넘겼다. 몇 컷을 찍는 체하더니 자기 카메라로 찍자 했다. 미안한 마음에 응낙했다. 이 사람, 기회다 싶었는지 연거푸 찍어 댄다. 이상해서 그만 찍으라 하고는 얼마인지 물어보았다. 그가 찍은 것은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한 열 장 정도 찍었나? 암튼 사백 프랑 쯤되는 돈을 요구했다. 나는 그 사람한테는 아시아에 온 봉이었다. 후다닥 달러로 계산을 해보니 백 달러 가까운 돈이었다. 이건 분명히 악덕 사진사라 생각하고 주위에 경찰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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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있는 경찰한테 "익스 큐즈 미"하고 다가갔으나, 이 경찰 놈은 그냥 휙 하고 날 무시하고 지나간다. 다른 경찰을 찾아 당신 영어 하느냐고 물었더니 '농' 하고 가 버린다. 그 사진사는 나한테 돈 달라고 재촉한다. '경찰한테 물어보자.' '기다려라.' 라고 말하고 다른 경찰을 불렀다. 개선문에는 치안을 위한 경찰이 여기저기 눈에 보였다. 이번에 나를 본 경찰이 내 얘기를 듣더니 다른 동료 경찰과 그 사진사를 양쪽에서 겨드랑이들 끼고 끌고 갔다. 그 사진사 걸린 게 처음이 아닌가 보다. 일단 나는 위기를 면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곳에서 사진사한테 함부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앞서 지나친 불친절한 도움이 안 된 경찰 때문에 프랑스 파리에 대한 나의 망상은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지만, 그래도 파리는 아름다웠다. 특별히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사방이 아름다운 건물과 조각 물들로 문자 그대로 파리시가 예술이었다. 생전 처음 해외 출장을 나와 그것도 파리를 방문하는 기회가 왔으니 행운이었다.
파리 거리에는 수많은 대리석 조각상들과 동상이 대로변이나 공원에 널브러져 있지만, 사람들 손에 훼손된 것은 하나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조각물이나 조형물이나 사람 손에 닿을 만한 곳이 있는 것은 예외 없이 훼손되어 있다. 오물이나 낙서로 더럽혀져 있는 것을 우리는 일상 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못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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