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절단 일원으로 남미 주요국 순방 출장나오셨던 사장님은 귀국하셨다. 이제 나는 나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현지에 남아 남미 여러나라 대리점을 순방할 계획이었다. 새로 지역 담당을 맡게되어 각 대리점과의 사업계획도 다시 리뷰할 일도 있고 당장 계획된 생산 오더도 집행토록 하기위해 대리점 방문은 하루에 끝나지 않고 며칠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더욱 힘들었다. 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부실한지 인플레이션은 연 몇백 퍼센트나 되었다. 하루종일 대리점과 입씨름을 하다 피곤한 몸으로 호텔에 돌아오기도 했다. 대 미국달러 환율은 아침 저녁 다르게 폭락하고 있었다. 미화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다음 날은 더 많은 아르헨티나 화폐로 환전할 수가 있었다. .
하루는 시간 여유가 있어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의 쇼핑몰인지 시장 같은 곳을 들렀다. 워낙 페소가 약세이고 연일 환율이 떨어져 모든 물건 값이 달러를 갖고 있는 나한테는 개값이었다. 아주 쌌다. 집사람한테 줄 선물을 사려고 시장에 갔지만 딱이 뭘 살 건지 아이디어가 나오질 않는다. 이때 나를 수행했던 직원이 아르헨티나는 가죽 제품이 유명하기 때문에 가죽 옷을 사가지고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고민하던 중 그거 좋은 생각이라고 대뜸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색갈도 좋고 디자인도 좋은 것을 찾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싸이즈를 모른다. 마누라 싸이즈를 모르니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 가게 여직원 중 키가 마누라와 비슷해 보이는 아가씨를 오라고 했다. 내가 우리 와이프 싸이즈를 모르는데 네 키가 얼마냐, 몸무게는 얼마냐 고 물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고 웃기만했다. 그래 안아보자고 농담으로 말했더니 앞으로 다가선다. 이거 웬떡? 안아 보았지만 대중을 잡을 수가 없다. 그 아가씨한테 입어 보라고 하고는 이리저이 앞뒤로 보다 결국 그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 싸이즈를 골라 반코트를 샀다. 당시 유행했던 쎄무 가죽이다. 진한 초콜릿 색갈인데 내가 보아도 참 좋아 보였다.
그 부피가 크고 무거운 가죽 반 코트를 몇 달동안 출장 다니면서 들고 다녔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기때문에 요령없는 사람의 실수였다. 앞으로 다닐 출장 계획을 봐가면서 개인 쇼핑도 할 것 안할 것을 가려야 하는데 싸다는 이유로 그냥 산 것이 이렇게 무거운 짐이 될줄이야. 고생하면서 들고 다니다 귀국해서 마누라한테 선물이라고 주었지만, 자기 싸이즈에 맞지 않고 크다면서 짜증을 내는 게 아닌가. 나는 화가 났다. 고생하면 가지고 온 것에 감사는 못할 망정 화를 내는 마누라가 야속했다. 나는 그 후로 한 동안 마누라한테 선물을 사주지 않았다. 지금도 절대로 옷같은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지금의 대리점 사장 카비치올리는 1994년에 구대리점이 교체되면서 새로 지정된 사람이다. 그 전의 대리점은 수출 초기에 현대 대리점으로 지정되었지만, 국내 경기의 침체로 꽃을 피어보지 못하고 사업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