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고서를 책상 앞에 놓고 앉았다. 사장은 내 보충 설명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보고서를 대충 훑어 보더니 보고 내용의 순서 편집이 잘 못 됐다며서 페이지를 홱 잡아 넘기다 한장이 찢어졌다. 바로 회장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난리도 아니다. 허겁지겁 투명 스카치 테이프로 이어 붙여 회장실에 들고 가서 보고를 마쳤다. 결론은 회장 이하 관계임원들이 같이 현지를 한번 방문해 보자고 결론지었다. 나름대로 큰 수확이였다. 회장께 보고했고, 현장 방문을 하자 했으니 일단 최고경영층의 관심을 끌어 놓은 것이다. 현지에 가보면 마음을 바꾸고 굳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바로 대리점에 연락을 했다. 높은 사람들이 대거 출동할 것이니 정부 요인들과의 면담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회장께 보고하도록 한 것은 사실은 당시 부회장의 아이디어였다. 이분을 모시고 쌍파울로에 가서 정부 요로의 장관과 고급 공무원들과 상담도 하고 중앙정부 고위 관료로 부터 정책과 그들의 의지도 읽고는 관련 중역과 회장을 현지에 모시고 가보는 게 좋겠다고 나한테 말했다. 그래서 회장을 현지에 방문토록 작전을 꾸민 것이다.
한번은, 이때도 1996년이였다. 아직 회장께 보고하기 전이였다. 브라질 쌍파울로에 출장을 갔을 때였다. 그 당시에는 쌍파울로 까지 대한항공이 직항 운항을 했다. 쌍파울로까지는 LA에서 기름 보충하고 계속 날아 가기 때문에 비행시간은 꼬박 하루가 걸려도 견딜만 했다. 대리점이 빨리 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단번에 현지에 날아갔다. 대리점 산하에 있는 전국의 딜러들의 원성으로 대리점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였다.
현지 부두에 적체되어 있는 미 통관 재고차량에 대한 처리 방안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제 3국에 전매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이런 경우 구매 의사가 있는 쪽에서는 헐값에 사려고 하기 때문에 일이 진전이 안 되고 있었다. 내가 브라질에 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전국에 퍼져 딜러들이 나를 만나자고 요청해왔다. 부담되는 일이지만 회피해서는 안된다. 얘기를 들어 보기로 하고 날자를 잡아 약속했다.
한방에 가득찬 딜러 수가 대충 열댓 몇 명이 넘어 보였다.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어 전장에 나가는 군인같이 표정이 결연해 보였다. 이들은 한결 같이 현대자동차의 브라질 시장에 대한 계획은 뭐냐? 현재 차가 없어 판매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딜러가 모두 망할 지경이니 지원해 달라, 현대는 왜 생산공장을 세우지 안는가? 아세아자동차를 봐라 등등 끝이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생산 베이스를 갖자고 본사에 얘기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