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D 포니 개발로 동남아 진출
이야기는 잠시 때와 장소를 바꿔 네덜란드에서 본사 귀임 후의 일을 적어 내려갈 까 한다.
네덜란드 현지법인 현대모터홀랜드의 개업식 그랜드 오프닝도 조촐하지만 끝났고, 부품담당으로써 딜러 기초 재고 리스트도 완성됐다. 지금 생각하면 현지 조사도 미흡한 상태에서 현지채용한 직원고 둘이서 작성한 기초재고 리스트였으니 엉터리가 아니었으면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딜러가 추가 지정될 때마다 부품만 보내주면 되고, 부품 추가 발주는 어떻게 하는지 매뉴얼을 작성했으니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이제 태스크포스 멤버로써 내 할 바를 다 한 셈이다.
네덜란드에서 차장으로 승진하고 본사로 돌아오자 해외판매부에 약간의 조직 변경이 있었다. 현지법인 부품담당이였던 나를 기획조사과 담당으로 발령을 낸 것이다. 나의 능력을 인정한 것일까? 아니면 라이쉔담에서 열심히 목수 일을 마다 않고 몸바쳐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일까? 기획조사과 발령을 받고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일반지역에 지속적으로 시장 개척을 하면서도 우측 핸들(RHD)을 사용하는 국가, 즉 영국이나 일본의 식민지였거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 이에 해단된다. 선진국 시장은 엄격한 에미션(배기가스) 규제나 안전 규정 기준 미달로 진출을 못 한다 하더라도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던 홍콩이나 동남아 국가와 같은 시장은 더 이상 진출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펼쳐두기..
내가 기획조사 과장으로 맨 처음 시작한 일은 RHD 시장을 개척하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RHD 적용 국가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다음, 이들 시장 진출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최고 경영진에 RHD시장 진출의 당위성과 진출 전략을 상세히 보고하여 일단 추진승인을 득하는 것이 우선 할일이었다. 경영진의 승인 없이 가능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
큰 틀로 보면 첫째, 우리가 현재 수출하고 있는 LHD 포니를 RHD 버젼으로 개발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기간을 기술센터(지금의 R&D 센터)에 의뢰하고, 둘째는 동남아 등 일반 지역의 RHD 국가에 진출하여 성공을 거두면 이어 영국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였다. 다음은 동남아 담당자를 내 소속으로 확보하여 구체적인 현지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RHD 개발의 당위성과 수출시장 확대 계획을 사장실 옆 대회의실에서 사장님 주재 임원회의에 전 임원 앞에서 브리핑 챠트를 걸어 놓고 보고하는 날이였다.
요즈 젊은 세대는 파워포인트는 잘 알아도 브리핑 챠트란 말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장님 이하 전 중역 앞에서 브리핑을 하는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하는 큰 이벤트였다. 가슴이 뛰고, 만약에 실수를 하면 어쩌나, 오늘 보고하는 계획이 퇴짜를 맞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대회의실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내 브리핑는 대과없이 잘 진행되었고 임원 모두 수긍했다. RHD시장 진출 계획이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제 동남아 진출을 위한 현지 시장 보충 조사가 본격 시작됐다. 나는 이 프로젝트 추진하면서 동남아 지역 담당을 겸임 발령을 받았다. 신 차종 포니 RHD 버전 개발도 진행되었다. RHD 포니가 개발되는 동안, 영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시장조사를 본부장에게 건의했다. 이렇게 해서 개발이 시작된 포니는 1981년에 동남아시장에 드디어 선적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역담당자들은 대리점 후보자의 면담과 현장 조사를 거듭하면서 최적의 대리점을 선정하는 작업도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현대자동차는 1981년에 동남아 시장에 진출을 시작했고 이에 고무된 해외판매부 담당직원들은 영국에 진출하기 위해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품질 개선, 디자인 개선, 기본사양 보강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일년이 좀 더 지나 우리 차는 영국 땅에 진출하지만 대망의 영국 시장 진출은 역경이였다. 여전히 낮은 한국의 인지와 경쟁력 없는 품질은 영국소비자의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