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8일 수요일

Once upon a time 37 <에어터뷸런스>

야간 비행에 당했던 에어터불런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페루 리마로 돌아가기 위해 야간 비행기를 탔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 사람들은 심야 비행을 레드-아이-풀라이트 라고 한다. 밤새 잠을 잘 못자고 아침에 눈이 빨개진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아르헨티나 내륙지방의 포도생산으로 유명한 멘도사 지역 상공을 지날 때쯤 승무원들은 음식을 날아다 주고 마실 것을 주문받고 있었다. 스튜어디스가 트레이를 걷어 간 다음  마실 것을 갖다 주었다. 저녁 식사 후 스카치위스키를 주문했다. 지금 같으면 맛있는 포도주를 시켰겠지만, 그땐 야간 비행이니 위스키 한잔 마시고 푹 잠들고 싶었다. 나와 동행했던 대리와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출장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행기가 우르릉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아래로 뚝 떨어진다. 금방 먹은 음식을 토할 것 같다. 아이쿠 이제 죽었다! 손에 들고 있던 위스키는 바지에 쏟아졌다. 이어 비행기는 롤러코스터같이 위로 치솟아 올라가다 떨어지다 치솟아 오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마치 종이비행기 같이 방향을 잃고 위아래로 요동친다. 안데스산맥 위를 비행하던 우리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 어느 높은 산에 부딪혀 추락할 것 같은 공포에 모든 승객은 물에 빠진 사람같이 허우적대며 소리를 지른다. 끄~윽!

쥐고 있던 위스키 잔은 언제 놓쳤는지 바닥에서 뒹굴고 있다. 비행기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으면 의자의 양쪽 팔걸이를 잡아당겨 올린다. 떨어지지 말라고 무의식적으로 당기는 것이지만, 그게 어디 될 말인가? 안데스 산맥은 남미를 동서로 가르는 아주 긴 산맥이다. 높이는 6,000미터나 되는 산도 있고 보통 4-5,000미터나 되는 산들이다. 비행기가 에어포켓에 빠져 심하게 고도가 떨어지면 산에 부딪힐 수도 있다. 워낙 산이 높기 때문에 그리고 에어 포켓에 빠지면 비행기는 수백 미터 떨어진다고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기장이 콘트롤을 잃어버려도 비행기는 안데스산맥 어디엔가 만년설 속에 파묻히면 찾기도 어려울 일이다. 언젠가 이런 상황설정으로 된 영화를 본 일이 생각났다. 공포는 극에 달했다.

이러기를 몇 분 동안 계속하는데 기장이 승객 중 의사가 있으면 도움을 청한다는 기내 어나운스멘트가 있었다. 승객 중 노인 한 분이 기절을 해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잠시 후에 비행기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한 비행을 계속했다. 두 시간쯤 후에 우리가 탄 비행기는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착륙했다. 앰불란스가 대기하고 있었고 기장은 페루 리마까지 가는 승객중 계속 비행하고 싶지 않은 사람한테는 호텔비를 항공사가 부담한다면서 신청하라고 했다. 우연이겠지만 이번에도 항공사는 미국항공사 브라니프였다. 도착지연과 연발을 밥 먹듯 하여 고객의 불만이 최고로 달렸던 브라니프는 결국 1982년엔가 파산하고 말았다. 기내 승무원들의 서비스도 고객에 대한 나몰라라식이었고  경영도 엉망이었지만 운도 없었던 것 같다.

드디어 우리는 칠레 싼티아고 공항에 착륙하였다. 트랩을 타고 비행기에서 내려 드디어 땅을 밟았다.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다는 것을 이전에는 몰랐다. 공포의 고공에서 같이 타고온 승객들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서로 껴안아주며 살아남은 것을 축하해 주었다. 나와 동행한 직원은 다음날 대리점과의 약속이 있어 계속해서 리마에 가야했지만, 막상 비행기에 타고 이륙할 때 느끼는 기분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수년 동안 터뷸런스 공포증에 걸려 고생했다. 비행 중 기체가 조금만 흔들려도 경기가 일어나는 것 같아 머리가 쭈뼛 서곤 했기 때문이다.


to be revised and corr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