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홀아비들
가족을 두고 홀로 나와있는 주재원들은 외로움을 잊을 방법을 찾는다. 주중에 일에 묻혀 살지만 주말이면 딱이 재미있는 일이 없다. 전부 한 지붕 아래서 일하고 먹고 자기 때문에 퇴근도 없다. 그렇다고 주재원 모두에게 차가 지급되는 것도 아니므로 누구 한 사람이 차를 몰고 나가는 날이면 꼼짝없이 저 푸른 초원에 갇히게 된다. 가장 가까운 가게도 걸어나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차는 필수 장비이다. 외출은 자동으로 모여 나간다. 단체행동 하듯 조그만 포니에 다섯 명이 구겨 타고 도시로 나간다. 개중에는 코드가 맞는 동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할 수 없다. 빌라에서 갇혀 있기 싫으면 행동 통일을 해야 한다.
빌라에서 조금 멀리 나가면 헤이그가 있다. 라이쉔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트레밀이 있다. 삼 형제 풍차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운하 옆에 세워진 풍차 셋이 나란히 있는 그림엽서에는 멋있고 근사하게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아무것도 아니게 생각될 정도다. 그래도 본사에서 출장 온 직급이 비교적 낮은 출장자에게 풍차를 가까이 보여 주는 관광 코스 중 하나다.
펼쳐두기..
암스텔담, 로텔담, 헤이그 같은 대도시에는 볼거리가 많다. 70년대 우리 서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하고 번화한 거리는 구경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밤에는 섹스샵이 즐비하고 커다란 쇼윈도 안에 비키니를 입고 손님을 기다리는 창녀 촌도 훌륭한 볼거리이다. 유럽에서 섹스산업으로 번창 한 도시가 대표적으로 세군데가 있다. 암스텔담, 코펜하게, 함부르그. 그중에서 암스텔담이 제일 번창한 곳이었다고 할까? 차를 몰고 서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푸른 북해가 너울댄다. 네덜란드 땅이 바다보다 낮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바다를 면하는 해안선은 제방으로 되어 있다. 아마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제방 위에 올라가 북해 바다와 육지를 보면 바다가 오 육층 건물 높이만큼 높아 보인다. 그만큼 육지가 낮은 것이다. 제방이 터지면 육지는 삽시간에 바닷물에 묻혀버릴 것이다. 그래서 구멍뜷린 제방을 팔뚝으로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 안델센의 동화가 나올 만도 하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헤이그 변두리의 볼링장으로 갔다. 순서를 기다려 우리 일행이 볼링을 막 시작하여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레인을 비우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비워달라고? 체킨 데스크에 가서 확인하려고 물어보았다.패일언하고 비우라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 이제 막 게임을 시작했는데 게임도중에 비우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따졌다. 우리가 벌떼 같이 몰려 항의했지만, 이들은 안면을 바꾸고 대꾸도 하지않는다. 우리 일행 중에 종합상사 황 차장이 있었다. 화가 잔뜩 났다. 뚜껑이 열린 것이다. 결국, 쫒겨 나오며 볼링장 직원한테 황차장이 삿대질을 하면서 "비 케어 풀, 어!" 소리지른다. 우리는 씁쓸히 비가 내리는 밖으로 나왔다. "우리말로 너 조심해, 어!"라는 말이었지만 그 격한 순간에도 나는 이 표현이 정말 미국 사람들이 이런 때 쓰는 건가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우스갯소리 소리로 이 말을 쓴다. 네덜란드 사람 중에는 대한민국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아시안들을 아프리카 흑인보다도 더 깔보는 것을 가끔 느낀다. 그날 이후 네덜란드인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