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 선적분 포니 자동차 중 일부 몇대는 우선 통관하여 현지법인의 야적장 공터에 삼십여대를 갖다 놓았다. 딜러들에게 배송하기도 할 것이고 또 전시용을 사용할 작정이었다. 이제 전체 딜러 대회를 해야 한다. 개업을 알리는 그랜드 오프닝 행사를 개최해야 한다. 장소는 남들 같이 호텔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현지법인 건물안에 임시 회의 장소를 만들었다.
호텔에서 개최할 예산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우리가 쇼룸으로 사용하던 실내 공간은 빌라 건물 뒤편에 있는 정비공장에 붙어있는 건물이였다. 건물 내부의 크기는 약 이백평 정도나 될까? 이곳은 법인장 사무실이 있고, 그 동안 주재원들이 간단한 스낵을 먹고 차를 마시는 장소로 사용했었지만 이제는 쇼룸으로 사용될 계획이였다. 다른 곳에는 쇼룸을 만들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헤이그에 가서 미국의 홈데포 같은 마켓에 찾아가 쇼룸으로 개조하는데 필요한 재료를 찾아 구입했다. 개조 작업이라 해야 자동차를 전시할 전시대 제작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것저것 몇가지를 구입해 와서 머리속에 그린대로 작업을 시작했다.
펼쳐두기..
우선 부품창고를 개조 작업하고 남은 각목과 널판지를 옮겨와 톱으로 자르고 못을 박으면서 자동차를 올려 놓을 팔각형 전시 스탠드를 만들었다. 동료직원들이 옆에와서 돕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헤이그까지 나가 사오기도 했다. 현지인들도 작업하는 옆에 와서는 신기한듯 이번에는 뭘 만드느냐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위 사림인 부장님은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가 많지만 못들은 체 했다. 내가 자진해서 시작했고 그분이 작업중에 불쑥 나타나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짜증나기도 했지만 어쩌랴.
전시단 위에는 카펫을 오려 붙이고 옆에는 알미늄 패널 재료를 덧대 멋을 냈다. 그리고는 자동차를 비춰 줄 조명장치까지 만들어 완성시켰다. 그럴듯 했다. 차를 올려 놓고 전원을 연결해 조명까지 하니까 근사했다.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현지법인 사장님도 만족해 하셨다. 그게 진심였는지는 모르겠다. 본인이 생각해도 한심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사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할 일이 또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소규모로 현지법인을 설립,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돈을 쓰고 싶어도 쓸돈이 없다. 모두 우리 손으로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뭘 하든 진정 프로페셔널한 면은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건물에 들어오는 다리위 입구 정문에 내걸은 현수막도 내가 하얀 광목 같은 천을 사다 내 손으로 HYUNDAI MOTOR HOLLAND GRAND OPENING 이란 글을 페인트로 써 만든 것이였다.
뭐든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마련한 것들로 그랜드 오프닝 준비는 완료되었다. 드디어 현대 모터 홀랜드 (HMH)의 공식 출범식과 딜러 미팅을 거행하는 날이 되었다. 이 날도 눈 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라이쉔담의 조그만 마을에 위치한 우리 현지법인은 귀빈으로 라이쉔담시장을 초대했고, 주 네덜란드 대사도 초청했다. 딜러로 선정된 딜러 대표도 스무명 정도 참석했다. 이렇게 해서 이백평이 채 안되는 창고안에서 직원들, 딜러 대표와 업체 대표 몇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조촐하게 현지법인 개업식을 열었다.
우선 법인장이 인사말을 하고 이어 귀빈들의 축사가 있었다. 이어 우리가 판매할 제품인 포니 차의 언베일링이 있었고, 제품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나는 주재원 중에 유일하게 딜러를 상대로 짧막한 연설을 했다. 연설 초반은 고객이 우리 차를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도록 아프터 서비스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충분한 부품을 이미 확보 해놓았다는 내용이였고, 이어 네덜란드말로 "네덜란드 말을 배우고 있지만 발음이 너무 어렵다" (익 반 홀란세 안 헷트 레이른, 마르 아윗트스프레흔 이즈 에르흐 뮈일렌) 고 하자 외국사람이 자기 나라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던 모양이다.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분위기가 좋아졌다.
간단한 다과회를 열고 그랜드 오프닝은 막을 내렸다. 우리가 이때 딜러대회를 개최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이 나라에서 판매할 준비가 늦여졌었고, 둘째는 1월에 암스텔담 인근에서 라이 모터쇼가 개최된다. 모터쇼와 때를 맞춰 딜러대회를 하고, 이어 모터쇼에 우리 차를 출품 전시하면 홍보 효과가 더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
자동차역사에 대한 블로그인가요?
답글삭제대단하시네요 ㅋ
@친절한민수씨 - 2009/08/29 14:23
답글삭제30몇년전에 현대자동차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국산차 포니로 세계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해외로 뛰어다녔던 기억을 더듬어 쓰고 있습니다. 지켜 봐주세요.
무엇이든 처음 도전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고작 한 포스팅을 읽었는데도 눈물겨웠던 지난날로 비춰지는군요.
현대가 오늘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라나게 된 뒤에는 분명,
님과 같은 분들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일을 어떻게 이렇게 세세히 기억하세요?
답글삭제정말 대단하세요.
우리집 첫 차로 포니를 기억해요.
친척 분이 타던 걸 물려주신 거였는데 처음 차를 탔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도 기억나네요.
@spk - 2009/08/29 18:15
답글삭제처음에는 좀 무모한 면이 있었지요. 그런 것들이 훗날에 좋은 경험으로 시행착오를 면하는 초석이 되었지만..
@boramina - 2009/08/29 19:55
답글삭제그랬지요. 그때는 포니만 타도 폼재는 시절이었으니까요. 포니얘기는 계속됩니다.
Pony사진을 올려 주셨다면 더욱 좋았을텐데...
답글삭제@핑구야 날자 - 2009/08/29 22:49
답글삭제찾기가 힘들어 우선 있는거 올렸습니다, 감안하겠습니다. 어드바이스 감사합니다.
아* 현재 나오는 현대자동차를 보면 다 저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자랑스러운 현대자동차에도 아직까지 현지 적용모델이라는 변명으로 수출형과 국내형을 다르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번에 나온 투싼ix 국산은 빔프로젝트형이 아니죠.. 하지만 수출형은 다르죠.. 정말 가격 상승도 그렇고 여러가지 면에서 정말 자동차 시장이 개방되거나 섬나라 도요타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 진..
답글삭제아무튼 처음의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미국에서의 현대의 선방 너무나 요즘 기분 좋은 일입니다.
@II Fenomeno - 2009/08/30 15:29
답글삭제나라마다 경쟁력을 고려한 스펙을 정하기도 하지요. 암튼 내국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