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8일 수요일

Once upon a time 3 <식사당번>

식사 당번

점심 식사하러 직원들 모두 차를 몰고 나가는 것은 시간을 많이 뺏기고 돈도 많이 들어 과장 이하가 돌아가며 식사당번하기로 정했다. 종합상사 주재원 대리 한 명을 포함해서 과장 이하 직원은 모두 여덟 명이다. 전무님과 부장 한 분 그리고 종합상사 소속 차장은 열외로 예우를 해주었다. 여덟 명이 차례로 하루에 두 명씩 돌아가며 점심과 저녁식사 준비를 책임진다.

식사당번 날에는 자기 본연의 업무는 포기해야 한다.
아침은 각자 빵과 우유로 때우지만, 점심은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을 해먹으려면 당번이 마켓에 가서 음식재료를 사와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짓는데 수퍼마켓에 물건 사러 갔다 오면 오전 시간이 거의 다 간다. 당일치기로 장보기는 시간이 너무 빡빡해서 전날 장 보는 일이 많았다.

반찬거리 살 것을 메모해 가지만 이게 쉽게 되지 않는다. 김치가 먹고 싶어 양배추(김치 만드는 배추는  없었다), 파, 소금, 고추가루 등을 사왔다. 배추를 씻어 소금 뿌려 저리고 배추가 숨이 죽으면 간을 본 다음 고춧가루를 뿌리고 색깔이 비슷해지면 병에 담가둔다. 김치가 맛이 어떤가 하고 방금 담근 배추 조각을 하나 집어 입속에 넣어 보았다. 옛날 집에서 김장 담글 때 집어 먹던 김치 것 저리 맛을 생각하면서 입속에 넣자 이상한 맛과 냄새가 나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빨간 가루는 고춧가루가 아니고 다른 양념 초 말린 것이었던 모양이다. 고춧가루 사는 것을 이렇게 한번 실수하고 또 몇 번을 실수를 반복한다.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네덜런드 어를 모르니 포장에 쓴 상품명을 알 수가 없다. 물어봐도 그들의 대답을 알아듣지 못한다. 눈에 보기에 비슷한 것으로 몇 번 샀지만, 거푸 실수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서너번 실패 끝에 결국 고추가르를 알아내 샀던 기억이 난다. 고추가루 하나 가지고 어찌나 신나던지..

그래도 이런 고생을 하면서 식사 준비가 되면 주방 옆에 붙어 있는 사무실에 식사준비 완료를 알리면 모두 식당에 모인다. 한국에서 보내온 밑반찬에, 식사당번이 바뀌고 마켓에서 산 반찬거리도 다르고 암튼 솜씨와 재료가 다르니 맛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부장님과 사장님은 "헛. 이건 또 뭐지? 너희들이 만드는 음식은 매일 다르냐?" 하면서 웃으시지만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잘 잡수시는 것을 보면서 짠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조직에서나 좀 이상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부분 주재원은 자기 식사당번 일에는 아무 소리 없이 식사준비를 하지만 이 중에 딱 한 사람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외근(?)을 나간다. 외근인지 외출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나간다. 마음씨 순한 한 친구는 그 식사당번을  여러번 대신 해주는 것을 보았다. 난 그 사람을 삼십 년 가까이 한 직장에서 보았지만, 그 얌채스런 친구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런 것을 보고 캐릭터와 성격은 변치 않는구나고 생각한다.

때로는 주재원들이 자취하는 식사에 현지인 직원을 특별 초대하기도 했다. 우리와 그래도 친한 직원을 같이 식사하자고 부른다. 우리 식사메뉴는 이들이 먹는 식사하고는 아주 다르지만 사장실 비서였던 젊은 풋사과 같은 아가씨 페트라는 잘도 먹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하는 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주방은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가끔 끌이기 때문에 한국 음식 고유의 강한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는 잘 못 느끼더라도 이들한테는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어찌 보면 회사 망신시키는 일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얘기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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