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 Juhn's Blog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에 알림으로써 일상 생활에서 필수교통수단을 어떻게 선택하고 현명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일본 닷테야먀 트레킹
오늘 새벽에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월요산행은 접어두고 친구들과 점심 약속을 해 모처럼 서울 문안으로 나들이 했다. 비온 후여서 인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이 한 여름을 비웃고 있는 것 같다. 시원한 곳으로 피서를 위해 떠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오래전 부터 초여름의 북 알프스, 아직 눈이 많이 남았을 때 북 알프스에 가보고 싶었다. 이곳은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산으로 초여름이 되어도 눈이 녹지 않아 산장을 열 수가 없어 입산을 금지, 7월 초에나 트레킹이 가능하다고 한다.
2007년 여름 8월에 갔을 때에는 정상 가까운 높이의 북향 계곡에만 얼음 눈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이번엔 눈이 좀 더 남아있는 산을 트레킹하고 싶어 몇 번 함께 했던 혜초 트레킹을 오늘 오후에 방문했다.
지난 번 가예약을 해놓은 터라 모객이 잘 되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알고 싶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다테야먀(立山)가 다른 북 알프스의 야리가다케(槍力'岳)나 오쿠호다카다케(稿혜高岳) 보다 덜 알려졌을까? 모집이 아직 진행 중이었다. 일본 북알프스에서도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는 다테야마는 산행의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도 않다고 한다. 해발 3,015M. 3박 4일 코스다. 출발 예정일은 7월 17일과 24일이 거의 확정적이다. 많은 산을 좋아하는 트레커들과 같이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2009년 6월 28일 일요일
Once upon a time 32 <본사에서 온 텔렉스>
경제협력단 순방 일정을 마치고 사장님께서는 귀국 길에 오르셨다. 나는 전임 Y 부장이 진행했던 신규 대리점 선정 과정에서 중단되었던 것을 마저 마무리 작업을 위해 나보다 먼저 현장에 나와 있던 직원과 합류해 페루 리마로 돌아왔다. 대리점 후보와 여러 차례 만나 회의도 하였다. 최초 삼 년간 판매목표, 가격 조건, 마케팅 계획과 판매망 구축계획 등을 깊이 있게 논의했지만, 결국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 가지 찜찜한 것은 이 후보는 나의 전임자가 이미 본사에 최적의 후보로 추천되었고 대리점 지정 직전 단계에 와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현지에 나와 있던 직원이 그동안 면담했던 제삼 후보를 몇 명 만나 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호텔 텔렉스 실에 내려갔던 직원이 본사에서 날아온 텔렉스를 가지고 왔다. 직원의 안색이 안 좋았다. 얼른 넘겨받아 읽어보니 내용이 정말 황당했다. 다른 부서로 전임되었던 나의 전임 부장 Y를 페루의 시내버스 개선 프로젝트를 위해 페루에 파견시킨다는 것이다. 내가 지역 담당인데 다른 사람을 또 보낸다는 것은 내가 미덥지 않게 보였다는 것인가? 사장님을 수행하는 동안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생각났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하는 것 보니 자동차 판매 경험도 없는데다 스페인 어도 모르지 불안했던 것 같다. 총애했던 부장이었지만, 중역들의 건의로 할 수 없이 해외사업부에서 퇴출했던 전임 지역담당 부장을 다시 불러 일을 시켜보겠다는 것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 아닐까?
당시 페루 정부는 대중교통 시스템은 아주 엉망이었다. 우리나라 60년대 하동환 버스가 제작한 지엠 트럭 차대위에 드럼통을 펴서 차체를 만들어 제작한 서울 시내버스는 양반이었다. 이런 형편없는 리마 시내버스를 교체할 계획이라는 첩보를 듣고 전임 부장은 그동안 공을 많이 들였다. 시내버스 핑계로 일 년에 반이 넘는 시간을 남미에 보내고 있었다. 전국 버스 조합장을 만나 술 접대를 하면서 우리 버스의 장점을 늘어놓고 있었다. 사실 우리 버스는 가격을 쌌을지 모르지만 다른 면에서는 경쟁차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었다. 가장 강력한 경쟁사는 볼보였다. 볼보는 이미 시외버스를 많은 수는 아니지만 페루시장에 수입되어 운행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2009년 6월 27일 토요일
EV Maya가격이 $35,000
신형 순수 전기 자동차는 볼티모어에서 공유 프로젝트에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금주 초에 이 차의 가격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 USA Today 지는 소문으로 나온 가격이 맞는다고 했다. 그 얘기는 60 마일 주행 버젼은$25,000. 120 마일 주행 능력의 Maya 300 모델은 $35,000가 된다고 했다.
Maya300은 현재 NEV로 분류하는 것을 고려되고 있다. 이는 도로에서 25 mph 이상의 속도로 주행할 수 없게 된다. Gas2.org는 Electrovaya는 사람들한테 고속도로 주행용이 개발되고 있으며 앞으로 수년 내에 (within the next few years) 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Maya 300 NEV는 2011년에는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 Maya Mobility의 new website는 이차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AltCar website는 발티모어의 메릴랜드 싸이언스 센터에서 이 신형 전기차가 어떻게 공유가 될 것인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연료전지 자동차 Riversimple
첫째, 이 차는 일반 보통 차의 대체 차가 아니라는 것. 그 대신 아주 작은 2인승 차이다.
둘째, 보통 디자인과 제작에 관한 소유권의 비밀은 공개적으로 모집된 것으로 모든 설계와 정보는 온라인으로 무료로 공개될 것이라는 것.
셋째,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이 차는 가격이 싸다는 것이다.
Riversimple에 사용될 연료전지를 개발한 회사 Horizon Fuel Cell Technologies에 따르면 이 혁신적인 차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월 200파운드($315)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것을 다른 유사한 선진 기술과 비교한다면; 예를 들어 Mini E는 일 년간 월 $850에, Honda FCX Clarity는 3 년간 월 $600 리스 비용이 든다. 물론 이 차들은 각기 다른 차이긴 하다. Mini E는 다른 기술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지갑을 들고 딜러를 찾아갈 때 $850짜리 차보다는 $315의 짜리 차를 선택할 것이다.
Riversimple는 2013년 부터 리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 차는 1kg의 수소탱크 가득 채우면 6kw의 연료전지가 있기때문에 240마일 범위를 주행할 수 있으며, 50mph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이 효율은 개솔린 1 갤런으로 300km를 주행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Once upon a time 31<사장 수행 출장>
사장님이 페루 리마에 머무는 동안 대리점 후보에 오른 사람이 사장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대리점 후보의 집은 집 둘레에 높이 삼 미터는 족히 되는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총을 들고 경비하는 사람이 열어주는 큰 대문 안으로 차를 탄 채 들어가자 널따란 정원이 펼쳐진다. 집안으로 들어가 거실에는 파일이 발등을 덮을 정도의 푹신한 카펫이 깔려있다. 참 호화스러웠다. 성북동 사장님 댁에 행사가 있어 한두 번 가봤지만, 그보다 훨씬 크고 호화로운 것을 보고 놀랐다.
페루는 아직 사회주의가 만연해서 국민 대다수는 사회주의자라고 했다. 페루 국민의 90퍼센트가 저소득층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극빈자라는 소리를 들은 일이 있다. 이들은 정부의 보조로 겨우 연명하는 계층이다. 이런 빈곤층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빈곤층과의 갈등은 없을까? 그래도 이들은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돈 많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을 편 가르지 않고, 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점이었다. 길거리에는 좌판 위에 별것도 아닌 것을 놓고 장사를 한다. 우리나라 60년대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나마 이들은 장사하지만 대부분 인디오들은 길거리에서 하릴없이 방황한다. 그리고 틈만 있으면 남의 물건을 훔치던가 소매치기를 일삼는다. 길거리 소매치기는 한자리에 서 있으면 한 시간에 몇 차례를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주의하지 않으면 주머니 속에 있는 것도 언제 없어지는지 모르게 남의 물건이 된다.
그 사람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밥만 먹을 수가 없었다. 다그쳐야겠다는 생각에 언제까지 생산 오더를 확정하겠느냐고 물었다. 초기 페루시장에서 현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초기 마케팅계획을 주말까지 초안이라도 내놓으라고 잘라 말했다. 그 사람은 유태인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사람들 상술은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졌기 때문에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생략하고 좌우지간 우리를 갖고 놀려는 싹을 잘라 버리기로 했다. "나는 예하면 예고 아니만 아니다. 확실히 하자!"고 말하는 것을 사장님에 들었다. 식사끝나고 호텔에 돌아오는 차에서 나한테 말한다. "그래,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그렇게 다그쳐서 말 듣겠어?라고 하신다. 나는 그뜻이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더 세게 밀어부치라는 건지 아니면 달래서 하라는 건지. 그후에 나는 그 유태인을 후보 리스트에서 삭제해버렸다. 다른 사람을 결국 선택한 것이다.
사장님 일행 중남이 경제협력팀은 페루에서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옮겼다. 칠레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칠레 대리점 사장인 마중을 나왔다. 대리점 사장은 깊은 생각 끝에 '본사에서 사장님께서 왕림하시는데 포니로 모실 수 없지 않은가, 큰 차를 가지고 마중 나가야지' 아마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차가 대기하는 데로 대리점 사장이 안내했다. 사장님은 대기하고 있는 차를 보고 대뜸 화를 내는 것이다. 당시 칠레 대리점은 우리 현대 뿐만 아니고 일본 미쓰비시 대리점도 하고 있었다. 미쓰비시가 생산한 포니보다 큰 차로 모시겠다는 충정을 우리 사장님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차에 타고 호텔로 가는 차안에서 하시는 말씀이 다짜고짜 "대리점 바꿔야겠어." 하신다. 대리점 사장이 우리 말을 못 알아듣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얘기라 생각했는지 내 눈치를 본다. 내가 뭐라겠는가, 그의 눈을 피하고 시침떼는 수 밖에.
to be corrected and revised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닛산 미국에서 EV 생산계획
Nissan to build EVs, Batteries in the US
6월20일 자 오토모티브뉴스는 닛산자동차가 전기자동차와 그 배터리를 미국에서 생산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저리의 융자가 가능한지 타진하고 있다고 닛케이 비지니스 데일리가 말했다고 보도했다. 총 투자액은 대략 5백억 엔(5억 1천6백4십만 달러)로 추정하고 있는데 1천억 엔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계획으로 닛산은 미국 테네시주 스머나(Smyrna)에 있는 공장에 전기차 생산 라인을 지을 것이라고 했다. 2012년까지는 친환경차를 연산 50,000대에서 100,000대 능력을 갖는데 처음에는 소형전기차를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닛산은 NEC와 합작으로 스머나 공장부지에서 고성능 리티움-이온 배터리 생산시설을 새로 지을 의향을 가지고 있다. 닛산은 미국에 자동차 산업 지원용 저리 융자를 신청했다. 닛산은 조만간 1천억엔 이상의 융자 허가를 받을 것이라고 이 소식에 밝은 사람으로부터 들었다면 동 신문은 보도했다. 닛산은 2010부터 전기차를 일본에서 연간 50,000대를 생산할 생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친환경 차 관련 기술이 아무래도 일본 보다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Once upon a time 30<남미지역 담당 발령>
1980년 이름 봄이었다. 중역회의를 끝내고 돌아온 해외사업부장(지금의 해외영업본부장)이 나를 찾는다고 비서한테서 연락이 왔다. 당시 나는 기회조사과(지금의 해외 마케팅부과 비슷)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사업부 각 부서의 사업계획과 수출실적을 점검하고 보고한다. 동시에 신시장 개척에 관한 일에 많이 몰두하고 있었다. 기획조사과장으로 있으면서 북미시장의 전초기지 캐나다 시장 조사를 시작했던 것도 이때였다.
1980년에는 현대자동차 사옥은 번듯한 것 하나 없었다. 광화문의 현대건설 빌딩에 세 들어 살다 현대건설의 해외 수주로 사세가 확장하면서 비좁아지자 현대자동차는 종로구 계동에 있는 옛 휘문고등학교 건물로 밀려나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휘문고등학교 교사는 현대그룹이 사들인 것이다. 전통적인 목조 학교건물의 교실 사이의 벽을 허물어 내고 기다란 사무실로 쓰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주 오래전 일 같지만 불과 30년이 안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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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하면 스페인 식민지로 중남미 거의 모든 나라가 스페인 어를 사용한다는 것만 알았다. 나는 스페인 어는 우노, 도스, 트레스 도 모르는 쌩 판 모르는 문맹이었다. 걱정이 앞선다. 지금까지 중남미를 담당했던 부장은 나름 스페인 어를 잘하는 것 같았다. 국제 전화로 남미 대리점과 통화하면서 스페인 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듣고 기가 죽을 판이었다. 그 전임 부장은 여러 가지 문제로 임원들로 부터 눈 밖에 나고 결국 다른 부서로 밀려나게 되었다. 판매의 경력이나 스페인 어, 세일즈맨으로써의 자질은 나와 비교가 안 되는 인물이었지만 해외출장 동안의 개인 행실과 다른 문제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해외판매부에서 퇴출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는 당시 사장님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이다.
업무 인수인계도 채 끝나기 전에 사장님께서 당시 상공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중남미 경제협력단과 함께 님미 순방 출장을 떠나시는데 나보고 사장 수행 출장을 준비하라고 한다. 인수인계도 끝나지 않았고 업무파악도 아직 안된 나한테 게다가 남미 땅은 밟아 보지도 않았는데 사장님을 수행하라는 막중한 임무를 지어준다. 사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십여 년 되는 동안에 그때처럼 처절한 좌절감을 느낀 적도 없을 것이다. 내가 모시고 가는 높은 분은 사장님이고 그를 수행하는 나는 차장 쫄다구이니 같이 가까이 옆자리에 탈 수도 없는 처지다. 서울서 출발한 비행기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내려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는 비행편이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페루 리마였다. 이등칸 맨 뒤에 가까운 자리를 잡고 있는 나는 내가 비행기에서 내리면 이미 사장님을 어디 계신지 안 보인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를 찾아 겨우 옆으로 가면 그는 나를 본체도 하지 않는다. 뭐가 싫은지 눈치를 보면 모르나. 그가 나를 봤을 때 한심했을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부장을 여러 중역들의 탄원에 해외사업부에서 퇴출했지만, 그와 나는 많은 경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장님이 나를 봤을 때 한심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했겠지만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남미담당 시켜달라고 했나?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2009년 6월 16일 화요일
GM을 앞으로 뭐라고 불러?
이미 많은 사람이 GM을 Government Motors로 비아냥거리며 부르고 있는데, 이 회사의 CEO Fritz Henderson은 이런 이름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떠들썩한 고뇌 속에서 생각한 것은 Detroit Free Press는 GM이 정말로 회사 명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기사 일부를 보면 ...
Now, [a name change] also could be a sign to consumers that this really is a new, different enterprise. But GM's immediate challenge will be selling vehicles such as the Chevy Volt that were clearly conceived and designed by the current company, warts and all.요즘 GM을 가장 일반적으로 부르는 이름은 "New GM"이다. Free Press는 GM은 그대로 GM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으로 믿고 있다. 만약에 회사명이 바뀐다면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Volt가 새로운 회사의 브랜드로 사용될 것이라는 것. 새 회사에 새로운 형식의 제품. 걸맞지 않은가?
2009년 6월 14일 일요일
Once upon a time 29 <아프리카 렛슨 No.1>
비행기 수하물은 본인이 직접 챙겨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이이보리 코스트 아비잔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체킨을 하고 아무리 비행기 탑승안내를 기다려도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없다. 더러 무슨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와도 윙윙거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궁금하고 내가 못 들었을지도 몰라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어보기도 했다. 아직 연결편의 도착이 지연되는 바람에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렸을까? 마침 탑승 안내방송이 스피커로 통해 나온다. 오디오 시스템이 나쁜지 아니면 내가 듣는 실력이 부족했던지 무슨 소리인지 신경 안 쓰고 탑승하라는 말만 듣고 그냥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아이보리 코스트 아비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날씨는 무지 더웠다. 찐다. 땀이 뻘뻘 흘러 가슴팍으로 내려온다. 배기지 클레임 싸인을 따라가 짐을 기다렸다. 내 쌈소나이트 트렁크가 나오지 않는다. 나와 같은 비행기로 온 사람들은 모두 짐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황당하다. 내 짐이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공항 화물 분실 신고 담당을 찾아가 비행기 표에 붙여준 짐표를 보이면서 내짐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신고를 했다. 다음 날 전화해 보라는 담당자 말을 듣고 밖에서 기다리는 우리 정비담당 직원이 몰고 온 포니를 타고 호텔로 갔다. 아직 시간이 있어 호텔 앞 우리나라 공관에 찾아가 도움을 청할까 했다. 참 부질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타고 온 항공사 대리점에 찾아갔다. 화물 분실한 것을 자초지종 설명하고 꼭 찾아 달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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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 지점장이 이리 전리 전화를 해보더니 그날 저녁 비행편으로 온다면서 공항에 가보라고 한다. 그 지점장은 보통 아프리카 사람들과 달리 양복을 입은 게 점잖아 보였다. 그 사람은 나한네 "당신은 아프리카 레슨 원을 모르고 무모하게 다니고 있다." 라면서 한마디 해준다. 비행기를 탈 때는 자기가 체킨한 짐이 비행기에 실리는 지 자신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면서 두세 가지를 바라지 말라고 자조적인 충고를 해주었다.
불란서 식민지였던 이아보리 코스트(꼬띠 드 부아)는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들보다 도시 모양새가 훨씬 나은 듯했다. 수도 아빗잔의 메인스트리트 변에 있는 건물들이 마치 파리에서 본듯한 아름다운 양식의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씨에라 레온, 가봉, 카메룬의 거리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국토의 면적도 그들보다 컸고 도착할 때 공항 터미널 건물의 규모와 시설도 훨씬 크고 좋았다. 내가 머문 호텔은 빙상 게임을 할 수 있는 아이스 링크가 있었다. 열대지방의 아프리카에서 아이스 링크를 볼 수 있다는 게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설이 있는 호텔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물며 가난한 나라들만 있는 아프리카에서 그걸 보았으니 신기했다.
아이보리 코스트 대리점 사장은 연세가 높은 분으로 실제 경영을 맡아 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 보였다.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역시 전문성이 많이 모자란듯 했지만, 그보다 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았다. 나는 불어를 모르고 그들은 영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조금 하는 사람을 통역으로 여러가지 아젠다를 가지고 회의를 했지만, 나의 뜻이 얼마나 전달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내가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본사 수출 정비를 담당하는 대리 한 사람이 장기 출장으로 와 있었다. 현지에서 발생하는 자동차를 정비해 주고 품질 문제를 본사에 보고하는 임무가 그가 하는 일이었다. 이 사람이 이곳에서 몇 달째 체류하며 불어 몇 마디를 배운 것 가지고 내 뜻을 전달했으니 오죽했으랴 싶다.
이곳을 떠나기 하루 전날 시간을 내어 장기출장자가 해변으로 나를 안내했다. 질펀하게 넓은 해변은 우리나라 해수욕장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다. 우선 사람이 없다. 그 아름답고 깨끗한 모래사장에 겨우 몇 사람들이 나와 공차기를 하던가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수평선이 한없이 긴 대서양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정말 외국에 온 것 같았다.
아프리카에 오면 사람들의 피부색이 검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느낀다, 모두 까맣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여자나 남자나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까만색 피부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동양상람인 내가 서 있으면 피부는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희다. 흑인 아이들이 신기한 눈으로 나를 보며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는 동양 사람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 같다. 동양 식당은 중국 식당이 더러 보일까 말까 했고, 간혹 일본 식당이 보였지만, 한국 식당은 눈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두달 동안 다니면서 한번도 한국식당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 한국은 이곳에서 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프리카인 열명한테 한국이 어디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열명이 다 모른다고 답할 정도였다. 이런데 와서 우리나라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를 팔겠다고 돌아다니는 우리나라 자동차 세일즈맨들이 무모하게 느끼기도 했다.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Mazda Stop-start
신형 마즈다 Axela가 오늘 일본에서 시판에 들어갔다.
마즈다는 이 친환경차를 월 2,000대를 판매를 원하고 있다. 기대했던 대로 신형 2.0리터 전륜구동 Mazda3는 마즈다가 i-stop이라고 부르는 stop-start technology 을 적용하였다.
Stop-Start 시스템은 원천적으로 자동차의 아이들링 즉 공회전을 막자는 것이다. 차가 서있는 동안에는 엔진이 자동으로 정지되어 공회전을 안함으로써 배출가스를 줄이고 불필요한 연료 소비도 막자는 것이다. 우리도 지금 부터라도 신호대기나 주행하지 않을 때는 엔진을 끄는 습관을 들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즈다는 이 신형 i-stop Axela는 연비가 43mpg(18.17km/L)로 구형보다 연비가 15퍼센트나 개선했다고 한다. 가장 싼 모델의 i-stop Axela는 가격이 1,890,000yen ($19,400)이다. 미국에서는 신형 마즈다3는 EPA 시험 스코어 카드에 좋은 점수를 땄다는 데....
The new Mazda3 was able to get an EPA "SmartWay" designation
2009년 6월 9일 화요일
GM 글로벌 배터리 시스템 개발 센터 개설
General Motors는 배터리 연구개발 능력을 대폭 확장했다. 미시간 주, 와렌(Warren)에 Technical Center 캠퍼스에 미국에서 가장 크고 앞선 배터리 시험실(largest and most technologically advanced in the US)을 개설했다. 이 새로 개설한 글로벌 배터리 시스템 랩은 GM의 Global Battery Engineering 자원을 이끌어 나가며, 전기로 구동되는 Chevrolet Volt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lug-in hybrid), 하이브리드-일렉트릭(hybrid-electric)자동차와 수소 연료(fuelcell) 자동차의 출시를 촉진 시킬 것이다.
비록 파산한 법정관리 받고있는 회사가 됐지만, 회생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연료등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Once upon a time 28 <정부 부품 부서간 갈등>
나는 처음 부서 배치를 받아 책상이 주어지고 자리를 잡으면서 조직표를 들여다보았다. 이름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업무의 성격으로 주어진 부서 이름 앞에 해외를 붙인 것이 이상하게 들렸다.
아무튼, 내가 속해있는 부품부와 그 옆의 정비부는 모두 자동차가 고객에게 판매된 이후 아프터서비스를 위한 지원하는 부서이다. 부품 없이는 정비는 불가능해지고 정비 기능이 없으면 부품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해외 정비부는 선적 전 차량의 사양점검과 간단한 성능을 점검을 뜻하는 PDI를 하기도 하고, 이미 고객에 판매된 차량에 대한 품질 보증업무를 맡는 일을 한다. 해외정비부와 가장 많은 갈등을 가졌던 부서는 해외부품부가 아니었던가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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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 기가 막힌 것은 대리점이 어떤 부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참고 자료인 부품 카달로그가 있는데 부품을 담당하는 해외부품부에서 카달로그를 발간하는 것이 아니고 해외정비부에서 발간을 하고 있었다. 카달로그에 등재되는 부품목록은 각 주요 부품의 부속품을 적절히 공급단위로 분해되어 등재되어야 하나 그렇지 못해 자주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카달로그에 등재되어야 할 부품은 정비의 용이성과 고객이 부담해야 할 부품 가격도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비 성만을 생각한 큰 단위의 부품을 통째로 교체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작은 필수부품만 교체해서 수리할 수 있도록 고려한 공급단위를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배려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당시 해외부품부는 단독 부품조달의 기능이 없었다. 없었다기보다는 준비가 안 된 상태였고, 정비담당 부서에서 발간한 부품카달로그는 그야말로 카달로그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카달로그에 있어야 할 부품이 누락된 것이 비일비재였기 때문에 대리점에서는 정비요원이 자동차 수리를 위해 필요한 부품을 주문하기 위해서 부품번호(Part Number)를 조회하고 싶어도 카달로그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이런 현실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카다로그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부품부에서 발간 해야 한다고 부서장에 건의했으나 그것을 관철하지 못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부품부는 도대체 준비가 전혀 안된 부서였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나 하드웨어 측면에서 전혀 해외부품부로써의 업무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듯이 부서 설립단계에서 한국 자동차산업 역사상 처음 하는 일들이니 업무표준이 있을 리 없고 표준도 없었으니 부서 간 갈등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사실 그 당시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부분이 회상하면서 지적되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도 보면 문제투성이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2009년 6월 7일 일요일
Once upon a time 27 <해외판매부 야인시대>
지금의 해외영업본부는 처음부터 그렇게 거창한 조직으로 시작된 게 아니다. 그저 외국의 어느 자동차회사의 수출전담 조직을 대충 베낀 것 같은 그런 것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1977년 3월 2일 자로 현대자동차 경력사원으로 공채로 입사하고 보니 조직과 실제 맡아 하는 일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분히 부서장 간의 파워게임을 하는 것 같은 것을 보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자동차를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서 해외시장 조사를 한다. 여러 후보 사 중에 가장 우수한 후보를 엄선하여 현대자동차 현지 대리점으로 지정하면서 대리점으로부터 수주한 자동차를 생산하여 선적하기까지의 관리 업무와 현지에서 판매된 자동차의 품질 보증 등 고객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합리적으로 업무가 배정된 조직이라기보다는 부서장마다 자기 업무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매일 업무영역 때문에 언쟁을 하는 일이 가끔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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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일이거든
수출기획부, 해외업무부, 회외판매부, 해외정비부, 그리고 내가 소속되어 있는 해외부품부 등 다섯 개 부가 있었다. 수출기획부는 매년 수출계획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부서다. 기획을 한다는 이유로 수출 판매부 내 다른 부서의 일을 하나도 빼지 않고 알고 싶어하고 간섭하는 그런 행태를 종종 보였다. 지금의 수출 기획실을 표방하는 임무였지만 초창기였기 때문에 자주 부딪치는 그런 양상이었다.
해외판매부도 막강한 파워를 누렸던 곳이다. 업무부는 수출용 차량 수주통계와 생산관리 및 선적을 관리하는 부서였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외판매부, 해외정비부, 해외부품부에 할당되어야 할 부서예산을 배분하지 않고 매달 타 쓰게 만들어 예산관리로 다른 부서를 장악하려 했다.
해외업무부장을 맡았던 부장은 목소리가 성우와 같은 미남형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와는 잊을 수 없는 몇 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그중 하나가 예산관리에 관련된 얘기다. 특히 부서 접대예산에 관한 얘기다. 접대예산은 업무추진을 위한 대외 접대에 필요한 비용과 직원들의 결속과 친목을 도모하는 단합 대회용 예산도 있다. 쉽게 말하면 소줏값이다. 그런데 이런 예산을 각 부서에 월별 배당하지 않고 독점관리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 불만이 쌓이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주 한 번 정도는 부서직원끼리 또는 업무적으로 관련 부서 직원과 퇴근 후에 소주 한잔하는 것이 관례였다. 식사비와 소주 값은 영수증을 달아 비용을 지급 요청을 한다. 요즘 같이 신용카드가 보편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개는 외상 장부에 싸인을 하고 나중에 결제되어 외상값 받아가라고 전화하면 득달같이 회사 사무실로 찾아와 돈을 받아간다.
이렇게 전표를 첨부해 비용을 청구하면 업무부장은 바로 결제를 하지 않고 미뤄두었다 안 되겠다는 듯이 과장들을 불러 모아 일장 훈시를 한다. 예산이 부족한데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쓰느냐는 둥, "당신은 퇴근 후에는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 같애." 라는 둥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도 서슴치 않고 했었다. 이렇게 그는 훤칠한 체격과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쫀쫀한 성격과 예산관리 스타일 때문에 인심도 잃었던 기억이 난다. 나쁜 성격은 아니었지만, 조직을 운영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매달 예산이 부족했다면 그것은 각 부서에서 비용이 지나쳤다고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예산이 부족한 것 아닌가 의심도 해보고 재정부와 협조해서 예산을 늘리는 것을 시도했어야 한다고 본다.
해외판매부는 신시장 개척을 위해서 노상 해외출장을 나가는 것이 일이었다. 신시장 진출을 위해서 시장 기초 조사와 대리점 후보를 물색하고 본사에 복수추천을 한다. 후보 사들 중에 최종 선정되는 과정은 본사에서 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본사 중역 또는 수출기회부장이라도 현지 사장을 가 보지 않고, 현지 시장 조사한 실무 담당자가 올린 내용 이상을 더 알리도 없다. 그런데도 수출기획부가 자주 브레이크를 건다. 대리점 선정을 서로 고유의 업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해외판매부는 모든 직원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말도 많아 다른 부서로부터 곱지 않은 눈으로 보기도 했었다.
초 저가 Tata Nano 미국에
미국 입성하기 전에 $2,500의 초 저가 차는 배기가스와 안전규정에 맞추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에 이게 성공한다면 대체연료나 디젤의 초 소형차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 조그만 차를 누가 판매할 것인가 인데, 아직 미정 상태이다. 이 나노 판매를 위한 딜러쉽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방법은 Jaguar나 Land Rover 딜러를 통해서 판매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두 브랜드는 금년 3월 26일 Ford로부터 Tata가 인수했다.
이 기사를 보고 필자는 작년에 현대자동차 마케팅 담당 중역이 미국에 경차 판매는 너무 작아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고려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 중역이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케팅이나 기획을 하는 사람은 한상 남보다 생각이 앞서야 한다.
2009년 6월 6일 토요일
미츠비시 iMiEV 양산 개시
미쓰비시 자동차는 오늘 오카야마 공장에서 순수 전기자동차 iMiEV 양산을 시작했다. 미쓰비시는 전기차를 양산하는 최초의 자동차 회사가 됐다. 앞으로 2년 안에 대부분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전기 자동차 양산을 시작할 것이다.
미쓰비시는 향후 금년 나머지 회계연도 말까지 (내년 3월 말) 2,000대를 생산할 계획이며 내년에는 5,000대를 생산한다고. 첫해에 생산되는 차는 기업체 업무용 훌리트로 판매되고 이어서 일반 소매는 금년 말께나 될 거라고 했다.
iMiEV 는 리티움-이온 배터리로 한번 충전에 주행 범위는 100 마일이라고 한다. 배터리는 미쓰비시와 GS Yuasa의 합작회사가 공급한다. 일본에서 정부지원 인센티브로 iMiEV의 판매가격은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31,300으로 이는 예상했던 $27,000 보다 비싸다. 아직 미국에 언제 판매될지는 결정된 바 없다. 분명 미국 판매할 것이지만, 우선 LHD 버전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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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motive News 에 실린 iMiEV 관련 기사요약;
미쓰비시자동차는 신형 전기자동차 iMiEV 판매가격을 438만엔으로 현재 화나율로 환산 $45,660이다. 2020년까지는 전세계 미쓰비시공장 생산의 20%는 전기자동차로 생산할 것이라고. 배터리로 구동하는 iMiEV의 양산 버전을 공개한 미쓰비시는 2010년3월31일까지는 1,400대를 기업체와 지방정부기관에 리스 판매한다. iMiEV는 다음 달 부터 일본에서 발매된다.
이와 별도로 후지중공업은 Subaru Stella 소형차를 공개했다. 가격은 $40,000. 그러나 미쓰비시의 판매목표는 Subaru 보다도 야심차게 해외 판매도 희망하고 있다. Subaru Stella는 해외 판매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iMiEV 유럽사양으로 내년에 유럽에 상륙할 것이다. 미국 진출은 그후에 될 것이다. 아직 가격은 발표되지 않았다.
일반 개인 판매는 2010년 4월에 시작되는데 주문을 7월에 받기 시작한다고 한다. 일반 개인이 그린카를 구입할 때
정부로 부터 $14,490를 보조 받아 소비자의 실제 부담하는 가격은 $31,170 이 된다.
친환경차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판매가격의 31%가 넘는 수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2009년 6월 4일 목요일
미국 5월 자동차 판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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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urce: Automotive News]
2009년 6월 3일 수요일
Once upon a time 26 <RHD 포니 개발착수>
이야기는 잠시 때와 장소를 바꿔 네덜란드에서 본사 귀임 후의 일을 적어 내려갈 까 한다.
네덜란드 현지법인 현대모터홀랜드의 개업식 그랜드 오프닝도 조촐하지만 끝났고, 부품담당으로써 딜러 기초 재고 리스트도 완성됐다. 지금 생각하면 현지 조사도 미흡한 상태에서 현지채용한 직원고 둘이서 작성한 기초재고 리스트였으니 엉터리가 아니었으면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딜러가 추가 지정될 때마다 부품만 보내주면 되고, 부품 추가 발주는 어떻게 하는지 매뉴얼을 작성했으니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이제 태스크포스 멤버로써 내 할 바를 다 한 셈이다.
네덜란드에서 차장으로 승진하고 본사로 돌아오자 해외판매부에 약간의 조직 변경이 있었다. 현지법인 부품담당이였던 나를 기획조사과 담당으로 발령을 낸 것이다. 나의 능력을 인정한 것일까? 아니면 라이쉔담에서 열심히 목수 일을 마다 않고 몸바쳐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일까? 기획조사과 발령을 받고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일반지역에 지속적으로 시장 개척을 하면서도 우측 핸들(RHD)을 사용하는 국가, 즉 영국이나 일본의 식민지였거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 이에 해단된다. 선진국 시장은 엄격한 에미션(배기가스) 규제나 안전 규정 기준 미달로 진출을 못 한다 하더라도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던 홍콩이나 동남아 국가와 같은 시장은 더 이상 진출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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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획조사 과장으로 맨 처음 시작한 일은 RHD 시장을 개척하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RHD 적용 국가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다음, 이들 시장 진출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최고 경영진에 RHD시장 진출의 당위성과 진출 전략을 상세히 보고하여 일단 추진승인을 득하는 것이 우선 할일이었다. 경영진의 승인 없이 가능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
큰 틀로 보면 첫째, 우리가 현재 수출하고 있는 LHD 포니를 RHD 버젼으로 개발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기간을 기술센터(지금의 R&D 센터)에 의뢰하고, 둘째는 동남아 등 일반 지역의 RHD 국가에 진출하여 성공을 거두면 이어 영국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였다. 다음은 동남아 담당자를 내 소속으로 확보하여 구체적인 현지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RHD 개발의 당위성과 수출시장 확대 계획을 사장실 옆 대회의실에서 사장님 주재 임원회의에 전 임원 앞에서 브리핑 챠트를 걸어 놓고 보고하는 날이였다.
요즈 젊은 세대는 파워포인트는 잘 알아도 브리핑 챠트란 말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장님 이하 전 중역 앞에서 브리핑을 하는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하는 큰 이벤트였다. 가슴이 뛰고, 만약에 실수를 하면 어쩌나, 오늘 보고하는 계획이 퇴짜를 맞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 대회의실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내 브리핑는 대과없이 잘 진행되었고 임원 모두 수긍했다. RHD시장 진출 계획이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제 동남아 진출을 위한 현지 시장 보충 조사가 본격 시작됐다. 나는 이 프로젝트 추진하면서 동남아 지역 담당을 겸임 발령을 받았다. 신 차종 포니 RHD 버전 개발도 진행되었다. RHD 포니가 개발되는 동안, 영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시장조사를 본부장에게 건의했다. 이렇게 해서 개발이 시작된 포니는 1981년에 동남아시장에 드디어 선적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역담당자들은 대리점 후보자의 면담과 현장 조사를 거듭하면서 최적의 대리점을 선정하는 작업도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현대자동차는 1981년에 동남아 시장에 진출을 시작했고 이에 고무된 해외판매부 담당직원들은 영국에 진출하기 위해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품질 개선, 디자인 개선, 기본사양 보강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일년이 좀 더 지나 우리 차는 영국 땅에 진출하지만 대망의 영국 시장 진출은 역경이였다. 여전히 낮은 한국의 인지와 경쟁력 없는 품질은 영국소비자의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to be continued
2009년 6월 2일 화요일
미국의 자존심 GM 파산 보호신청
GM Files Voluntary Chapter 11; Agreements with US Treasury and Canada; “New GM” Expected in 60-90 Days
1 June 2009
General Motors Corp. reached agreements with the US Treasury and the governments of Canada and Ontario for the creation of a smaller, self-sustaining “New GM”. Pending approvals, the New GM is expected to launch in about 60 to 90 days as a separate and independent company from the current GM.
The New GM will incorporate only the “best brands” and operations, and benefit from shedding much of the older debt burden and operating cost structure. The New GM will incorporate the terms of GM’s recent agreements with the United Auto Workers (UAW) and Canadian Auto Workers (CAW) unions and will be led by GM’s current management team.
2009년 6월 1일 월요일
Once upon a time 25 <눈 감으면 코베어 간다>
여행 다니면서 소지품 잃어버리는 것은 다반사이다. 크게 다행인 것은 나는 30여 년을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도 소지품을 잃어버린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아주 없었지는 않고. 그런데 내가 직장에 있으면서 같은 영업본부 동료 직원들이 해외영행 중 소지품을 잃어버린다든가 강도를 맞는 둥 여러 사례가 있어 여기 참고로 남겨 놓는다.
동료 직원이 남미 대리점 순방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마이애미 공항에서 다시 로스엔젤레스로 가는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치고 브리프케이스를 깔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등 뒤에서 어떤 꼬마 녀석이 물충을 쏴 상의가 물에 젖었다. 도망간 꼬마 녀석을 쫓아가 잡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어나 젖은 상의를 벗어 훌훌 털고 다시 가방을 깔고 앉았다. 탑승 시간이 되어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비행기는 이륙하고 머리위 선반에서 가방을 내려 무릎위에 올려놓고 보고서를 쓰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서류는 온데간데없고 벽돌만 한 장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신기에 가까운 이들의 감쪽같은 기술이다. 같은 색깔의 가방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었으며, 무게를 어떻게 짐작해서 비슷하게 맞췄는지 모르겠다. 무게만 많이 달랐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또 다른 케이스는 호텔 체킨하면서 생긴 일이다. 이것 역시 동료직원이 당한 일이다. 호텔에 도착하여 체킨을 하려는데 카운터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멀찌감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팔장끼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접근해서 알지도 못하는 것을 물어 순간 당황하여 우물거리고 있다. 그 사람은 가버리고 자기 옆에 놓여 있던 가방도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을 알았을 때는 그 사람도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없었다.
Once upon a time 24 <쓰리꾼 천지>
해외 여행 중에 소지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1994년 멕시코에 출장 간 일이 있었다. 출장 목적은 멕시코에 현지에 생산 공장 건립 투자 타당성 조사였다. 본부장을 필두로 중역과 담당 간부사원 여러 명 동행하였다. 우리나라 산자부와 같은 중앙정부를 방문하여 고위급 공무원들과 면담을 하는 동안 이 나라 공무원으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공무원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여기서 얘기는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소지품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 순간에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에서 일을 마치고 귀국 길에 올랐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멕시코시티 국제공항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 따라 왜 그리 사람들이 많았다. 카운터 앞에는 수십 명이 몰려 있었다. 나중에 알아차린 것이지만 그들이 모두 다 탑승수속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소매치기와 바람잡이들이 탑승 수속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빼려고 몰려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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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은 현대자동차 퀘벡주의 브르몽 공장에서 일을 보고 귀국길에 오른 울산공장 공장장이 토론토에 가려고 몬트릴공항 대기실에서 답승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서류가방을 안전하게 무릅 아래에 끼어 놓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브르몽 공장에 주재 근무하는 간부들 너댓명이 배웅하러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 그 때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유창하지 도 않은 영어로 무엇을 대답할려고 했는지. "뭐라구요?"하고 고개를 그 사람 쪽으로 돌려 물었단다. 그 낮선 사람은 어딘가를 물어 보는데 한국에서 간 사람이 뭐 알리도 없거니와 신경은 끊었어야 하는데, 그 사람한테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쓴 게 탈이었다. 이쪽에서 잘 모르겠다고 하자 그냥 고맙다고 하면서 그 사람은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 비행기를 타고 떠나려던 공장장은 자기 무릅 아래 끼워 넣은 커다란 변호사 서류 가방이 없어진 것을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