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유럽에 시장 조사차 장기 출장을 나가있던 사람은 최모 대리였다. 지금 보면 일개 대리 한 사람한테 그 엄청나고 방대한 유럽자동차 시장조사를 시켰다니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없는 일이였다. 하기사, 그 당시 자동차 세일즈 전문가도 없었고, 해외 마케팅이라는 말도 생소한 판이였다. 판매망 구축을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어쩌겠는가?.
나는 부품 수출담당이여서 처음에는 모르고 있다가, 시장조사를 위해 현지 출장중이던 대리와 부장이 의견 대립으로 갈등이 심했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 사실은 부품담당이였기 때문에 몰랐다는 것도 조직간의 정보공유 관점에서 크게 잘 못된 것이다. 이런 시장개척에 관한 일은 판매, 마케팅, 부품, 정비, 관리, 생산, 기술센터부문이 종합적으로 진행되어야 올바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장조사를 위해 출장온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현대자동차가 현지법인을 설립해서 자동차를 수입 판매한다는 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다른 한 사람은 할 수있다 ...뭐 이런 것으로 급기야 부하 직원인 대리가 본사 사장앞으로 '유럽 현지법인 진출 가망성이 없다'는 텔렉스로 보고서를 발송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이 일을 계기로 본사 최고 경영진은 현지팀을 보강하여 적극 추진을 확정하고 현지법인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보고사건 때문에 가망이 없다고 진출을 반대했던 대리는 본사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맡은 일을 해야한다. 누구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맡은 일에 대해 물어볼 사랍도 없다.
보강된 현지 태스크포스팀의 추가 조사로 유럽의 여러 국가중에 판매기지를 설립하기에 적당한 곳은 네덜란드라고 판단을 한 것이다. 영국이나, 독일, 불란서, 이태리 같은 나라는 이미 자동차 생산국이므로 미리 겁을 먹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현지법인이 설립되고, 수출부품부에서도 한사람을 뒤늦게 파견, 현지 주재원들과 합류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내가 부품부 파견인원으로 선발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당시 부품부는 해외에 수출된 자동차를 현지 대리점의 판매를 지원하는 고유의 업무가 있는데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본 준비가 젼혀 되어있지 않았었다.
우선, 부품수출부는 부품을 조달하는 기능과 조직이 있어야 하나, 그런 조직도 기능도 없었다. 조달은 직접하지 안는다 치더라도, 대리점으로부터 주문 받은 자동차 정비 수리에 필요한 보수용 부품의 포장과 선적 준비에 필요한 기본 물류시설도 갖추지 못한 형편이였다. 이렇게 부품 시스템이 아무것도 없는 자동차 회사가 현지판매법인을 지원하겠다고 부품부 직원을 파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현지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풉담당이 해야 할 일은 현지에서 판매된 포니 자동차가 고장났을 경우 그 차를 수리하는데 필요한 부품을 즉시 공급할 수 있도록 조직과 설비와 체제를 확보하는 것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것들은 본사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아무튼 맨손으로 현지에 앞서 파견된 태스크포스 팀과 합류했다. 현지 네델란드에는 법인장으로 전무가 있었고, 그 밑에 부장이 있었다. 이 사람은 본사 해외판매부에서 수출기획을 담당했었다. 똑똑하고 두뇌가 명석하다고 사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엘리트였다.
유럽자동차 시장조사팀으로 장기출장을 나와 일하다 부하직원과 갈등을 빚어 망신을 당하고는 현지법인 설립 태스크포스로 주저 앉게 된 것이였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성격이 워낙 유별나서 그 누구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본인은 일을 잘 하기위해서 그랬겠지만 동료의 입장에서는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였다. 이 사람과 법인장과의 사이에서 또 깡통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본사에서 보기에 얼마나 딱한 일이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내가 맡은 일을 해야한다.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고 사의할 사람도 없다.
to be continued